치과의사가 벤처기업가로 변신…한기환 (주)NTI 사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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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땅에서 잘 나가던 치과의사가 벤처기업가로 변신했다. 통신·네트워크장비 제조업체 (주)NTI의 한기환 사장(33)이 그 주인공.

한사장이 미국으로 건너간 것은 고교 졸업 후인 86년, 가족 전체가 L.A.로 이민을 가면서다. 남가주대학(U.S.C.)에서 전자공학을 전공한 그는 대학 졸업 후 같은 학교 치의학 대학원으로 진학, 치과의사 자격증을 땄다.

그 후 1년 반 동안은 순탄하기만 했다. L.A.시내에서 개업한 병원은 자신도 신기할 정도로 ‘장사’가 잘 됐다. 6개월 만에 L.A. 근교 빅터빌과 보스토우 지역에 ‘분점’을 낼 정도였다.

우리로선 잘 이해가 안 되는 일이지만, 미국에선 이처럼 한 사람이 몇 개씩 병원을 낼 수 있다고 한다. 3곳의 병원을 운영하면서 그가 벌어들인 연수익은 모두 1백만 달러. 미국 치과의사들의 연 평균 수입이 15만 달러 정도라니, 평균에 비해 7배 가까운 ‘장사 수완’을 가진 셈이다.

사실 ‘수완’이라는 말이 어울릴 정도로 그는 병원 경영을 잘 해냈다. 환자가 시간 약속을 하면 운전기사가 직접 집으로 ‘모시러’가는 ‘픽업(pickup)’서비스도 했다. 병원을 찾은 손님에게 칫솔과 T-셔츠 등을 선물하기도 했다. 특히 어린이 환자들의 생일은 꼬박꼬박 챙겼다. 치아표백·코팅 등 미용 치과 부문에 주력한 한사장은 “이 정도만 하면 남 부럽지 않을 만큼 돈 벌겠구나”하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하지만 어느날 갑자기 안정되고 순탄한 삶이 싫어지기 시작했다. 대학시절 아르바이트로 근무했던 텔텍이란 통신장비 회사에서의 경험이 그의 잊혀진 도전욕을 불러냈다. 통신 관련 사업을 하는 대학친구들의 격려도 있었다. 마침내 그는 부모님과 주위사람의 만류도 뿌리치고 97년 10월 한국으로 왔다.

처음 그가 손댄 것은 당시 인기를 끌던 ‘회선재판매’사업. 인터넷망을 이용해 국제전화를 싸게 걸게 해 주는 사업(실제로는 통화품질이 보장되지 않아 인터넷을 이용하지 않고 대부분의 사업자들이 통신요금이 싼 지역을 경유하는 방식을 쓴다)이다.

(주)한화와 함께 별정통신사업을 하던 그는 98년 말 사업이 한계에 다다랐다고 판단, 사업을 정리하고 업종을 바꿨다.

이때부터 그가 시작한 것은 제조업 분야. 통신용 장비를 제조하는 이 회사에서는 최근 라우터와 허브가 일체형인 네트워크 전송장비를 개발했다. ‘DSL링크’라 불리는 이 장비는 기존의 분리형 장비에 비해 40%의 가격 절감 효과를 가져온다.

지난해부터 1년간 개발한 이 제품은 현재 시제품을 생산중이며 올 6월 양산할 예정. 한사장은 “이 장비로 연평균 2백억원대의 매출이 예상되며 해외 마케팅에도 주력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또한 인터넷 폰 서비스 솔루션 개발에도 힘을 쏟고 있다.

올 가을부터는 본격 영업에 들어갈 예정. 회사의 안정적인 수익원을 갖기 위해 지난해부터 전자제품용 회로기판 제조업도 겸하고 있다. 현재 40명의 라인 직원들이 생산한 PCB기판이 모토로라 등에 납품되고 있다.

지난해 매출액은 16억원, 순이익은 1천만원이다. 매출액의 25%를 연구개발비로 쓸 만큼 신기술 개발에 주력하고 있다.

자본금 3억원으로 출발한 그의 회사는 엔젤투자자들의 참여로 현재 17억원대로 불어난 상태. 내년 초 목표로 코스닥 진출을 준비중이다. 한사장은 사업이 일정 궤도에 오르면 다시 치과를 개업할 생각이다. 이번엔 돈벌이보다는 봉사가 목적이다.

장소는 자신의 회사가 입주한 성남의 공단 지역. 한사장은 “내가 가진 기술로 이 지역 근로자들을 돕고 싶다”며 “가난한 근로자들이 부담없이 이용할 수 있는 곳으로 만들 생각”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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