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레니엄 명반] 브루크너 '교향곡 제8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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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톤 브루크너(1824~96)의 '교향곡 제8번 c단조' (1892)는 그가 남긴 9개의 교향곡 중 가장 규모가 크다. 3관 편성에다 연주시간도 보통 80여분에 이른다.

두터운 관악기 활용이나 끊임없이 샘솟는 선율에서 바그너의 영향을 발견할 수 있지만 아다지오 악장을 스케르초 악장 앞에 배치한 것이나 주제의 집요한 반복은 베토벤의 '교향곡 제9번' 을 연상하게 한다. 아다지오 악장은 이 작품의 무게 중심으로 연주시간도 35여분으로 가장 길다.

'브루크너 스페셜리스트' 로 알려진 루마니아 태생의 지휘자 세르지우 첼리비다케(1912~96)는 이 작품을 '브루크너 교향곡의 절정' 이라고 말했다.

이 앨범은 첼리비다케가 뮌헨필하모닉과 함께 레오폴트 노바크가 1890년에 수정한 악보를 사용해 연주한 93년 실황을 담은 것이다. 첼리비다케 사후(死後)에 아들의 동의를 얻어 출시된 '브루크너 에디션' 에 포함돼 있다.

생전에 일체의 상업적 레코딩을 거부했던 첼리비다케가 강조했던 콘서트홀의 신비스런 분위기(아우라)을 조금이라도 담기 위해 공연 시작 직전의 박수까지 그대로 담았다.

관악기로 피아니시모를 구사하는 것은 포르테를 연주하기보다 어렵다. 첼리비다케는 관악기 주자들에게 극도의 피아니시모를 요구한다. 인간 호흡의 한계에 도전하는 느린 템포로 연주 시간(1백4분)도 다른 지휘자의 녹음보다 훨씬 길다.

풍부하고 살아 숨쉬는 현악기의 음색과 잘 어우러지는 8개의 호른에다 4개의 '바그너 튜바' 가 돋보이는 관악 파트의 앙상블은 오르간 음색처럼 숭고하다 못해 신비스럽다. 동양적 관조를 통해 피안(彼岸)의 세계에 다다른 느낌이다.

복잡하게 얽힌 여러개의 선율과 방대한 구조에도 불구하고 듣기에 부담스럽지 않은 연주다. 첼리비다케의 손을 거친 수많은 음들이 크고도 맑은 물결을 이뤄 자연스럽게 흘러 넘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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