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운세 보고 운 좋은 날만 도둑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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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지난 6월 3일 오후 서울 중랑구의 한 고층 아파트 입구. 40대 남성이 한손에 테니스 라켓, 다른 손엔 묵직한 가방을 들고 나오는 모습이 폐쇄회로TV(CCTV) 에 찍혔다. 이 남성은 자신의 집으로 돌아와 탁상용 달력에 아파트 호수와 함께 ‘왕대박’이라는 메모를 써 넣었다. 가져온 아파트 현관 열쇠엔 동과 호수를 쓴 견출지를 붙였다. 또다시 같은 집을 털기 위해서였다. 이날 그가 챙긴 금품은 명품가방, 금반지, 카메라 등을 포함해 475만원어치 . 그는 ‘운수좋은 날’이라고 생각했지만 메모가 자신의 발목을 잡을 것은 생각지 못했다.

 서울 중랑경찰서는 복도식 아파트나 대형 서점 등에 들어가 61차례에 걸쳐 2억7000여만원어치를 훔친 혐의(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상습절도)로 김모(42·무직)씨를 구속했다고 26일 밝혔다. 그는 6년간 자신이 벌인 절도행각을 탁상용 달력에 고스란히 남겼다. 범행일시와 장소 등을 일일이 기록했고, 많은 물건을 훔친 곳은 별도로 표시해 놓았다고 경찰은 설명했다. 경찰은 “김씨는 달력에 오늘의 운세를 표시해 두고 운수 좋은 날에만 범행을 해 왔다”며 “김씨가 범행을 부인했지만 ‘범행일지’ 역할을 한 탁상달력이 핵심 증거가 됐다”고 전했다.

정원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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