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북, 진정성 없다” … 6자회담 조기 재개 힘들 듯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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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자회담을 재개해야 한다는 데는 이견이 없다. 그러나 북한의 비핵화 사전 조치 여부가 핵심이다. 이번 발표로 북한의 진정성을 평가할 수 없다.”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이 24일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러시아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서 ▶전제조건 없는 6자회담 재개 ▶6자회담 기간 미사일과 핵무기의 개발·실험 잠정 중단(모라토리엄)을 밝힌 데 대한 정부 당국자의 평가다. 한·미·일이 요구해온 것과 거리가 멀다는 것이다. 우리 정부는 북한에 6자회담이 재개되기 전에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찰단 북한 복귀 ▶핵시설 가동 중단 ▶미사일·핵실험 중단 등을 요구해왔다. 6자회담이 대화를 위한 대화가 되지 않기 위해서는 북한이 회담 전에 구체적인 비핵화 행동을 보여야 한다는 것이었다.

김정일의 이번 언급은 지난 5월의 방중 때보다는 한 발짝 나아갔지만 6자회담 전에 행동을 취할 순 없다는 얘기다. 그런 만큼 이번 회담으로 곧바로 6자회담의 물꼬가 트일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한국을 비롯한 6자회담 참가국 간에 이견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미국은 이를 바탕으로 6자회담을 조심스럽게 추진해 나갈 가능성도 있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중동 사태와 실업·재정적자의 경제 문제를 안고 있는 상황에서 내년의 대선을 맞고 있다. 북·미는 이미 한 차례 대화를 한 상태다.

중국도 한반도의 안정을 바란다. 미·중은 북한 핵문제에 획기적 진전이 없더라도 6자회담이 재개되기를 희망한다는 관측이다.

 러시아의 입장 변화도 주목거리다. 그간 러시아는 무조건 6자회담에 복귀해야 한다는 북·중과 철저한 사전 조치가 필요하다는 한국 사이에 있는 것으로 평가돼 왔다. 실제 알렉세이 보로답킨 외교차관은 3월 방북 당시 6자회담 사전 조치로 ▶핵무기 생산·실험 중단 ▶로켓발사 등 추가 도발 중단 ▶IAEA 사찰단의 영변 핵시설 복귀 등을 요구했다. 이는 북·중을 제외한 6자 관련국의 사전 조치 기준으로 작용해 왔다. 정부 당국자는 “러시아는 6자회담을 열기 위한 사전 조치의 필요성을 인정한다”며 “그러나 최근엔 ‘북한이 조건 없이 6자회담에 복귀하겠다니 거기서 논의하는 것도 어떻겠느냐’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고 설명했다. 메드베데프 대통령의 이번 중재는 한반도에 대한 영향력 확대를 꾀하기 위한 것일 수도 있다.

 이번 정상회담에선 북한을 통과하는 파이프라인을 거쳐 러시아 천연가스를 한국에 들여오는 프로젝트도 논의됐다. 메드베데프 대통령은 “북한을 거쳐 남한으로 가스를 공급하기 위한 특별위원회를 발족하기로 합의했다”고 밝혔다. 정부도 “3자가 금명간 만날 것”(당국자)이라며 부인하지 않았다. 그러나 정부는 이 프로젝트가 당장 실현될 것이라는 데 무게를 싣고 있지 않다.

정부 당국자는 “남·북·러 가스관 연결 사업이 가시적인 성과를 거두려면 수요자인 한국의 적극적인 참여가 필수”라며 “그러나 북핵 문제의 진전이 없는 상태에서 경제적 계산만으로 결정할 수 없다”고 말했다. 다만, 러시아 가스를 매개로 또 하나의 남북대화 채널이 가동되는 의미는 있다.

권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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