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 부자는 지금 관망 중 … 안 팔고 안 산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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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에서 제일 비싼 빌딩은? 서울 강남구 역삼역 옆에 있는 강남파이낸스센터다. 공식 통계는 없다. 그렇지만 임대료를 기준으로 추정해 보면 약 1조3000억원에 이른다.

 최고가 빌딩답게 이곳은 대한민국 ‘수퍼리치’들의 집합소다. 금융자산 10억~30억원 이상의 부자 고객들만 상대하는 금융회사의 특별한 지점이 6곳 있다. 기존 입주자인 삼성·우리투자·한국투자증권에 이어 지난주 목요일(18일)엔 미래에셋증권 VVIP지점도 문을 열었다. 여기에 국민은행과 외환은행의 거액 자산가 대상 PB(프라이빗뱅커)센터까지 합치면 이들 6개 지점이 관리하는 돈만 10조원에 육박한다.


 요즘 강남 수퍼리치들의 투자 안테나가 향하는 곳은 어디일까. 혼란스러운 시장, 투자의 길을 찾기 위해 이곳 증권사의 지점장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삼성증권 박경희, 우리투자증권 신혜정, 한국투자증권 조재홍 지점장이다. 이들이 모인 날(19일) 코스피지수는 1750선이 무너졌다. 23일엔 65포인트가 올랐다.

 ◆“강남 부자들, 별 동요 없어”

 ▶박경희=의외다. 조용하다. 고객들이 널뛰는 시장에 내성이 생긴 것 같다. 8월 둘째 주 급락이 시작됐을 때에는 전화 문의가 있었는데 오늘은 거의 없다. 오히려 거래가 없던 지방의 부자 고객들 중에 “강남 분위기는 어떠냐”고 묻는 전화가 더 많다.

 ▶신혜정=매수·보유·매도, 세 가지 가운데 고르자면 대다수 고객이 보유다. 경험 있고 투자에 자신 있다고 하는 분들만 단타로 좀 들어온다.

 ▶조재홍=마찬가지다. 두고 보자는 쪽이 다수다. 팔자는 고객은 이미 수익을 본 케이스다. 수익 난 종목을 중심으로 현금화하고 리스크 관리에 들어간 사람도 있다.

 ▶박=수퍼리치라고 하면 빨리 움직일 것 같지만, 10명이 있다면 첫 번째 움직이는 사람은 아니다. 두 번째, 세 번째쯤 움직인다. 일반 투자자들은 7번째, 8번째쯤 움직이는 거고. 처음 시장이 급락하면서 2000선이 무너질 땐 매수 문의가 조금 있었다. 실제로 투자는 안 했더라도 문의는 많았다. 그렇지만 시장이 2008년 리먼 때처럼 반등하지 못하고 재차 주저앉자 현금 확보 후 조금 더 지켜보자는 분위기다.

 ▶신= 그땐 아예 시장을 떠난 분도 많았다. 그런데 이번엔 그대로 주식시장에 남아 있다. 다시 회복할 것이라고 믿으며 침착하다. 이미 지난해 자문형 랩 등에 투자해 수익을 많이 냈다. 급락 이전에 차·화·정(자동차·화학·정유)에 집중 투자한 랩의 3개월 수익률이 마이너스로 돌아서자 일부 고객들은 이를 현금화한 상태였다.

 ◆“자문형 랩도 옥석 가리기 시작”

 ▶박=자문형 랩은 우리(삼성증권)가 제일 많이 팔았다. 최근 랩 수익률 하락으로 고객들 불만이 많지 않으냐고 언론에서 물어온다. 당연히 속은 상하겠지만 그분들이 수익률 나빠졌다고 해서 무조건 돈을 빼지는 않는다. 랩 시장도 진화하면서 자문사별로 특징이 뚜렷해졌다. 운용실적과 철학 등을 따져 자신에게 맞는 랩은 들고 가고 그렇지 않은 경우에 판다. 일부 고객은 자문사 사이즈(운용 규모)를 따져 일정액 이상이면 시장 상황에 민첩하게 대처할 수 없다고 정리하기도 한다. 급락 이전부터 이미 성장형·가치형·월이자지급형·중소형 등 랩도 분산투자하기 시작했다.

 ▶조=분산투자야말로 수퍼리치가 일반 투자자와 다른 점이다. 수퍼리치는 예금·주식·채권·ELS(주가연계증권) 등은 물론이고 경매·미술품·금 등 모든 대상을 고려해 총체적으로 자산관리를 한다.

▶신혜정=인내심이 뛰어난 것도 특징이다. 부자들이 정보에 빠르다. 그렇지만 섣불리 움직이지 않는다. 스스로 확신할 수 있을 때까지 기다린다. 그러다 확신이 오면 과감하게 들어가 장기투자한다.

 ▶조재홍=포철(현 포스코)을 한 번도 안 팔고 20년 들고 있는 고객도 있다. 평가액이 100억원이다.

 ▶신=그렇다. 확신을 가지고 투자한 경우엔 주가 빠져도 들고 간다.

 ◆“애프터 쇼크 전략은 에너지 비축”

 ▶박경희=부자들은 확실히 공부를 열심히 한다. 둘째 주 급락 초기에 아침 7시 세미나를 열었다. 얼마나 올까 싶었는데 100여 명의 예약한 분들이 거의 다 왔다. 평소보다 많았다. 주가 떨어졌다고 원망하기보다 앞으로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에 대해 공부하고 고민하는 분위기였다.

 ▶조=부자들도 지금 가장 궁금해 하는 건 주가 바닥이 어디고 언제쯤 올까다. 그리고 반등한다면 어떤 종목이 유망할지다. 반등보다는 약세장이 당분간 이어질 것으로 봐서인지 헤지펀드나 ELS에 대한 관심도 높아진다.

 ▶신=자문형 랩 같은 상승장에 베팅하는 상품에 대한 관심은 확실히 떨어졌다. ‘금리+알파’의 수익을 추구하는 절대수익추구형 펀드 같은 걸 찾는다. 그런데 실제로는 투자할 게 마땅치 않다. 어떤 고객은 ‘절대로 수익을 주지 않는 펀드’라고 부르더라. 해외 헤지펀드를 들여다가 재간접펀드 형태로 팔았는데 수익이 좋지 않다. 돈도 별로 안 모였고. 부자들은 자기가 잘 모르는 상품은 잘 투자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 헤지펀드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다고는 하는데 정착하는 데는 시간이 좀 걸릴 것 같다.

고란 기자

◆수퍼리치(Super Rich)= 보통 금융회사에서 금융자산이 수십억원에서 수백억원에 이르는 부자를 부를 때 쓴다. KB금융연구소의 부자연구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으로 국내에 금융자산이 10억원 이상인 부자는 13만 명에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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