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빈 '왕자티 훌렁 벗었어요'

중앙일보

입력

탤런트 원빈(23)이 달라졌다. 여자친구의 친구와 은밀한 눈길을 교환하는 핸드폰 광고의 긴 머리 모델로 그를 기억하는 시청자라면 KBS 새 주말연속극 〈꼭지〉 에 등장하는 '명태' 는 얼른 알아보기 힘들 정도다. 트레이드 마크였던 치렁한 머리를 짧게 깎고, 철 지난 검정 교복을 차려입는 등 달라진 외모 때문만은 아니다.

1970년대 중반이 시대배경인 〈꼭지〉 에서 명태는 인텔리 풍의 고교 교사인 큰형 준태(조민기), 정의감 투철한 경찰인 둘째형 현태(이종원)와 달리 깡패 기질의 사고뭉치 막내 아들 마음 한구석에는 따뜻한 애정을 간직하고 있지만 겉으로는 말투도 껄렁하고 성격도 불 같다.

아버지 때문에 속끓이다가 가출을 결심한 어머니를 말리기는커녕 "그렇게 사느니 나가 사시라" 고 부추기는가 하면, 화투놀이에서 일부러 시어머니에게 져주는 형수에게 버럭 화를 내는 식이다.

96년 데뷔작인 KBS미니시리즈 〈프로포즈〉 이래 내성적인 왕자풍의 배역을 거듭해온 원빈의 이력에서는 전례없는 배역이지만, 이를 소화하는 그의 연기도 전례없이 그럴듯하다.

변신에 대한 평가는 시청자 반응에서 읽힌다.
〈꼭지〉인터넷 홈페이지에는 "이제야 제 역할을 만났다" "외모뿐 아니라 연기변신도 짱" 이라는 식의 칭찬이 잔뜩 올라와 있다. 외모와 이미지 중심의 새내기 스타에서 '연기자' 로 한 걸음 내딛기는 했지만 그 행보를 유지하기가 쉽지 않은 모양이다. 매니저 이상규씨는 "겉보기와 달리 털털하고 까불기도 잘하는 빈이의 평소 성격과 딱 어울리는 역할" 이라고 자랑하면서도 "쟁쟁한 대선배들과 연기하면서 행여 틀리지 않을까 싶어 빈이의 심리적 부담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라고 전한다.

아버지 역의 박근형, 어머니 역의 윤여정 등 관록파 연기자들이 포진한 〈꼭지〉의 이후 전개는 원빈에게 몇 차례 더 연기 도약을 요구할 것 같다. 고교생 신분인 명태가 큰형의 초등학교 동창생이자 여덟살 연상의 미혼모 다방 마담(박지영)에게 사랑을 느끼게 되기 때문이다.

명태의 사랑 고백이 '연기자 원빈' 의 온전한 신고식이 될 수 있을지 지켜볼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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