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민호 기자의 레저 터치] 인심이 관광상품이 된 남해 해바리마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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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5일 이명박(MB) 대통령이 라디오 연설에서 여름휴가 얘기를 꺼냈다. MB는 연설에서 “여름휴가를 국내에서 보내면 내수 경제가 활성화한다”며 “온 국민이 지금보다 하루씩만 국내 여행을 늘리면 지역경제에 2조원이 흘러 들어오고 일자리 4만여 개가 생긴다”고 강조했다.

 MB는 연설에서 “국내에 좋은 여행지가 많아졌다”며 몇몇 장소를 열거했는데, 특히 농어촌 체험마을 네 곳을 콕 짚었다. 강원도 인제의 냇강마을, 경남 남해 해바리마을, 전북 임실 치즈마을, 충남 태안 볏가리마을이다. 이들 네 마을은, 사실 진작에 명소가 된 곳이다. MB의 연설로 달라진 것은, 이들 마을이 인터넷 검색순위에 불쑥 올랐다는 점뿐이다. 이들 마을은 이번 여름 수용인원 대부분을 이미 채운 상태였다.

 MB의 라디오 연설 이튿날. 마침 남해 해바리마을에 들를 기회가 있었다. 양명용(51) 이장을 만나 이것저것 묻다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됐다. 해바리마을은 전국 농어촌 체험마을의 가장 큰 고민을 말끔히 해결하고 있었다.

 해바리마을의 연매출은 5억원을 웃돈다. 특산품 판매수익은 뺀 액수다. 해바리마을 세대수가 100호니까 세대마다 연 500만원 이상 가외수입을 올리는 셈이다. 참고로 전국의 737개 농어촌 체험마을의 세대당 연수입은 100만원이 조금 넘는다.

 더 놀라운 건, 주민 160명 전원이 체험 프로그램에 참여한다는 사실이다. 이게 중요하다. 전국 농어촌체험마을에 예산 수천억원이 들어갔지만, 성과는 아직 미미하다. 가장 큰 이유가 동네 사람끼리 수시로 벌이는 시비다. 한 동네에서도 힘을 합치지 못하니 변변한 프로그램 하나 꾸리지 못하는 것이다. 그러나 해바리마을은, 옛 공산국가의 집단농장처럼 주민 100% 참여에 성공했다. 양명용 이장이 들려준 비결은 더 놀라웠다.

 “마을 체험프로그램에 직접 동원되는 주민은 절반도 안 돼요. 딱히 할 일이 없는 동네 어르신이 훨씬 많은데, 그분들에게는 따로 부탁을 해요. 동네에서 손님을 만나면 먼저 인사를 하시라고. 손도 흔들어주고 웃으며 ‘어디서 왔어?’ ‘고놈, 참 똘똘하게 생겼네’ 식으로 한마디만 붙이시라고. 이게 그분들에게는 마을 일에 동참하는 거예요. 물론 연말에 수익 나눌 때 어르신들에게 수고비를 드려요. 그러면 어르신들도 ‘나도 마을에 도움이 되는 구나’라며 좋아하시고, 손님들은 ‘세상에 이렇게 친절한 마을이 있나’라며 고마워해요.”

 도시인이 휴가 때 시골 마을에 가는 이유는 향수 때문이다. 삭막한 아파트에서는 느끼지 못하는 살냄새 맡으러, 여러 불편과 수고를 감내하고 찾아 들어간다. 웃는 얼굴로 사람을 맞는 게 얼마나 큰 일인지, 남해안의 작은 갯마을은 꿰뚫고 있었다. 양 이장이 밝힌 해바리마을 재방문율은 40%가 넘는다. 전국 농어촌체험마을의 평균 재방문율은 10%도 안 된다. 

손민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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