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5회 삼성화재배 월드바둑마스터스] 무릎 꿇고 사느니 죽음을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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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5면

<결승 3국>
○·허영호 8단 ●·구리 9단

제6보(50~61)=흑▲ 두 점이 놓이자 이곳 일대의 골짜기가 깊어졌다. 그 시커먼 색깔이 두려움을 안겨 준다. 백은 52, 54로 두어 목숨부터 살린다. 그 처지가 비참하게 느껴졌는지 54를 놓는 허영호 8단의 손끝에 힘이 하나도 없다. 상변은 본시 A의 턱밑 급소와 B의 붙임이 있어 침투가 가능한 곳. 그러나 이렇게 골짜기가 깊어지면 꿈도 꾸지 말아야 한다. 그렇다면 다 집인가. 아니다. 언젠가는 저기로 쳐들어가 옥쇄를 해야 할 운명인지도 모른다. 이 판의 운명이 어둡게 흘러가고 있다.

 구리 9단은 비로소 우하로 돌아와 55로 지킨다. 참 기구하다. 백이 화급한 위쪽을 놔둔 채 이곳을 둔 것은 30여 수 전이다. 그 바람에 30여 수 동안 얼마나 호되게 당했는지 눈물이 쑥 나올 지경이다. 한데 막상 55가 놓이고 보니 귀엔 뾰족한 수가 없다. 이렇게 기구할 수가 있단 말인가. ‘참고도’ 백1로 막으면 목숨을 부지할 수는 있다. 그러나 이런 식으로 후수로 살아서는 얘기가 안 된다. 흑6으로 저쪽을 지키기만 해도 형세는 대차로 벌어진다. 허영호는 눈 감고 58로 끊었다. 수는 안 된다. 그러나 ‘참고도’처럼 사느니 차라리 죽이는 게 낫다는 결심이다. 돌을 죽이면 ‘맛’이 생기고 ‘권리’가 생기는 법이니끼.

박치문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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