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작품을 말한다] '미친 키스' 작·연출 조광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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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가 많은 날은 웃음이 많고, 30대 이후가 많은 날은 박수가 깊다.

의아할 정도로 관객의 연령층에 따라 객석의 분위기가 바뀐다. 한 남자가 파괴적일 정도로 사랑에 집착하는 끔찍한 얘기를 최대한 눈부시도록 만들려 했다. 1차적으론 성공이다.

무대는 온통 흰빛이고 조명마저 컬러를 자제하고 백색광으로 강하게 내리비치니 망막이 자극 받아 눈부실밖에….

난 배우를 만나는 데 행운아다. 이제 '남자충동' 은 안석환 형의, '미친 키스' 는 이남희 형의 작품이 돼버렸다. 나는 그들 뒤로 가려져 버렸다. 질투와 자랑스러움이 엇갈린다.

통신에 오른 관람 평에 이남희 형의 묘한 말투와 무용 같은 몸짓 얘기가 많다.

형의 특이함은 울지도 웃지도 못하게 한다. 그래서 더욱 깊어진다.

'미친 키스' 의 비.희극을 누가 그만큼 해낼까 싶다. 또 한 배우, 여동생 은정 역의 이혜원이다. 나는 그녀를 발견했다. 그녀가 보였고 은정이구나 했다.

관객들은 그녀를 오래 기억할 것이다. 그 아름다운 퇴폐, 당장 부서져 버릴 철없는 관능, 전혀 성적이지 않은 섹시함에 반할 것이다.

열정을 잃어버린 위험한 중년 박용수 선배, 자기만의 방법으로 열정의 지배자가 된 정수영, 항상 떠나려 하는 여세진, 그리고 공연 내내 무례하게 무대를 휘저으며 파괴로 유혹하는 악마의 혀 강윤석은 웃음도 준다.

그리고 바람의 소리, 아코디언…. 아코디언은 이 연극의 또 다른 재미다. 극장에 가까워지면 아코디언 소리부터 듣게될 것이다.

공연 30~40분 전 입구에서부터, 공연시간 내내, 그리고 극장을 나서는 순간까지 그 바람소리가 울린다.

영화 '집시의 시간' 에서 아코디언에 매료됐었다.

춤곡 같은 경쾌함에도 불구하고 듣고 있자면 그 쓸쓸함에 몸서리 친다.

그것이 바람의 특성이던가…. 초연때 동유럽의 민요에서 선곡했고 이번엔 황강록의 작곡까지 추가해 음악이 더욱 풍성해졌다.

등장인물들은 서로가 서로를, A는 B를, B는 C를 등 바라기만 한다.

그들은 상대의 영혼에 닿고자 접촉에 집착한다. 집착할수록 허망해진다. 그렇게 만나고 헤어지는 관계들이 긴박하게 이어진다.

침대가 있는 방이라는 공간이 호텔.카페.교정 등으로 쉴새없이 넘나든다. 오히려 무용 같은 장면전환에서 더욱 깊은 정서를 포착하는 것도 감상 포인트다.

이전 장면에서 폭포처럼 쏟아지던 정서들이 아코디언과 함께 하는 전환에서 정리되고 내면에 쌓이도록 구성했다.

무엇보다 '미친 키스' 에선 배우들의 뜨거운 정열을 만끽할 수 있다. 가장 평범하지만 가장 확실한 진리, 정열적 인간은 아름답다. 특히 배우는 그걸 전문적으로 해내는 사람이다.

사람들은 누구나 한 때 뜨겁게 타오르는 열정을 앓거나 목숨 걸고 빠져드는 사랑을 꿈꾼다. 그것은 낭만적일 수도 치명적 독약이 될 수도 있다.

젊어서는 그 열정을 주체못해 쉽게 독에 중독되고, 나이들어선 원숙한 방법론을 얻게 되지만 열정은 이미 메말라 버렸다.

'미친 키스'를 본다면 젊은 연인은 자기 열정의 한계에 대해, 아련한 상처를 과거에 둔 사람은 잃은 옛 열정을 되새길 수 있다. 연인은 항상 안타깝기만 하다. 공연이 끝나도 일어나질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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