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yle&] 가을에도 원피스+재킷, 반바지+레깅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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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7면

회사원 김유리(28)씨는 최근 백화점 의류 매장을 돌아보다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여름 세일 품목에 있을 법한 반팔 티셔츠, 민소매 원피스가 신상품으로 걸려 있었기 때문. 소재까지 얇고 비치는 것이 많아 굳이 가을 옷이라고 불릴 이유를 찾을 수 없었다.

이씨는 “매장 마네킹들까지도 여름 옷을 그대로 입고 있는 것 같더라”고 말했다. 이를 ‘계절을 앞서가는 패션’의 공식이 깨진 것으로 봐야 할까. 여름 옷과 가을 옷의 경계가 사라지는 속사정을 알아봤다.

글=이도은 기자 사진=김성룡 기자

촬영 협조=오즈세컨·데님&서플라이 랄프로렌·클럽모나코·홀하우스·핀앤핏·탑걸·코데즈컴바인하이커(의상)·모그·헌터·라비엔코·만다리나덕(구두·가방·뱅글), 모델=염시윤(DCM), 헤어 메이크업: 라뷰티코어 청담점

가을 신상품이 반바지, 민소매 블라우스

얇고 가벼운 간절기 옷이지만 적당한 겉옷과 액세서리를 더하면 가을 분위기가 물씬 난다. 1·2 속이 비치는 시스루룩에는 꼭 맞는 가죽재킷과 부츠로 허전함을 채울 것. 3 민소매 원피스에는 야상점퍼와 빅백이 제격이다. 4 쇼트팬츠에는 무늬가 들어간 레깅스가 효자 아이템.


가을 신상품은 이르면 6월 말부터 매장에 깔린다. 본격적인 가을 옷이라기보다 간절기 옷이다. 해외 브랜드에선 아예 ‘프리폴 컬렉션(prefall collection)’이라는 이름으로 새 옷이 나온다. 겨울에서 봄 사이, 여름에서 가을 사이 틈새를 공략하는 제품들이다. 치고 빠지는 옷이다 보니 정규 컬렉션보다 물량도 적고, 디자인도 ‘어중간’ 그 자체다.

한데 최근 간절기 옷은 여름에 가깝다. 얇고 짧다. 특히 오즈세컨·탑걸 등 캐주얼 브랜드들은 하나같이 허벅지가 훤히 드러나는 쇼트 팬츠, 반팔 캐릭터 티셔츠를 쏟아냈다. 디자인만 해도 시원해 보이는 금속 소재로 장식한 티셔츠에 봄이면 빠지지 않는 원색의 꽃무늬까지 등장한다. 정장 브랜드도 마찬가지다. 모그·이자벨마랑 등은 다양한 민소매 원피스가 신상품으로 나왔다. 소재도 점점 여름 옷과 비슷해진다. 마소재·실크 등은 물론 바스락거리는 원단으로 청량감마저 준다. 오즈세컨 우경하 마케팅팀 과장은 “최근 간절기 옷은 색깔에서나 여름 옷과 차이가 날 정도”라며 “자주색·겨자색 등 가을 느낌이 나는 옷을 많이 내놨다”고 설명했다.

9월까지 무더위 … 패스트패션 영향도 받아

면·마로 만든 머플러는 간절기에 보온과 스타일을 동시에 해결해 준다.

간절기 옷이 얇아지고 짧아진 이유는 뭘까. 우선 기후 변화다. 무더운 날씨가 9월 중순까지도 계속되면서 ‘더운 가을’에 맞춰 반팔이나 반바지를 입는 일이 많아졌다. 브랜드들은 이에 맞춰 신상품 물량을 조절한다. 올 봄 추위가 계속되면서 3월까지 겨울 옷 판매가 호조를 보였던 것과 비슷하다. 빈폴 맨즈 정창근 팀장도 “늦더위 예보에 맞춰 올 가을 간절기 상품 중 반팔 티셔츠 물량을 지난해에 비해 세 배 늘렸다”고 밝혔다.

패스트패션 브랜드와의 경쟁도 한몫 했다. 열흘 간격으로 신제품을 내놓는 패스트패션 브랜드들의 영향력이 커지면서 이제는 그때그때 날씨나 유행에 맞춰 옷을 사는 문화가 자리 잡은 것. 그래서 기존 브랜드들도 ‘당장 입을 수 있는 옷’을 내놓는 큰 흐름을 따르게 됐다는 얘기다. 패션 분석기관 트렌드포스트 박은진 수석연구원은 “새로운 물건을 계속 내놓음으로써 브랜드 충성도가 높은 고객을 놓치지 않고 잡으려는 마케팅 전략까지 숨어 있다”고 설명했다.

겉옷에 따라 분위기 있는 가을 옷으로 변신

여름 옷 같은 가을 옷을 고를 때 맨 먼저 드는 생각. ‘세일도 안 받고 사서 얼마나 입을 수 있을까’ 하는 효율성이다. 하지만 요즘은 겹쳐 입기가 대세다. 또 적당한 재킷이나 점퍼를 더하면 가을 내내 효자 아이템이 된다. 대신 색깔만큼은 신경 써서 골라야 한다. 박지영 스타일리스트는 “초록 대신 카키, 오렌지 대신 겨자 등 채도가 낮은 색만 택해도 가을 분위기가 충분히 난다”고 말했다.

일단 여성스러운 민소매 원피스에 재킷을 걸치면 기본 정장이 된다. 하지만 좀 더 맵시 있어 보이고 싶을 땐 상반된 분위기의 야상 점퍼가 잘 어울린다. 구두도 힐보다는 워커·하이톱 운동화 등으로 바꿔볼 것. 여름에 신던 납작한 글래디에이터 샌들에 발목 양말을 신어도 색다르다.

반바지 차림엔 레깅스를 덧입는 게 정석이다. 대신 너무 답답해 보이지 않으려면 상의는 가능한 한 가볍게 하면 된다. 얇은 티셔츠와 짝지을 땐 베스트·야구 점퍼만 걸쳐도 가을 분위기를 낼 수 있다. 또 속이 비치는 시스루 룩을 가을까지 즐기려면 가죽 점퍼나 두툼한 롱 카디건 등 좀 더 부피감 있는 겉옷을 택하는 게 좋다. 이 외에도 액세서리만으로도 가을 분위기를 더할 수 있다. 긴 목걸이나 두툼하게 알이 박힌 반지로, 가방도 체형에 맞는 커다란 백으로 맞춰 ‘묵직한’ 이미지를 연출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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