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야구] 마운드에 '재기의 희망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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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천년 프로야구 마운드에 '재기의 희망가'가 힘차게 울려 퍼지고 있다.

지난 수년간 부상이나 부진으로 질곡의 세월을 보냈던 투수들이 시범경기를 통해 화려한 부활의 나래를 펼쳐 올 프로야구 전력 판도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암울했던 지난 날을 뛰어넘어 자존심 회복에 나선 투수 중 선두주자는 임선동(현대)과 손민한(롯데).

휘문고와 연세대를 거치면서 '제2의 선동열'로 불릴 만큼 뛰어난 재질을 인정받았던 임선동은 대학을 졸업하던 95년 겨울 일본 진출을 시도했으나 연고구단 LG 트윈스의 딴죽에 걸려 법정소송을 벌이느라 야구인생이 뒤틀렸다.

우여곡절 끝에 97년 LG 유니폼을 입은 임선동은 데뷔 첫 해 11승7패로 가능성을 보였으나 98년은 1승6패로 주저앉았고 현대로 이적한 지난 해에는 단 1승도 올리지 못했다. 그러나 새천년 수원구장 마운드에 오른 임선동은 달라졌다. 100㎏을 훨씬 상회했던 몸무게가 10㎏이상 줄어든 대신 130㎞대에 머물렀던 투구스피드는 10㎞이상 빨라졌다. 투구폼이 안정되면서 변화구의 각도와 제구력도 몰라보게 향상돼 올시즌 현대 마운드의 선발투수로 낙점받았다.

손민한은 지긋지긋했던 부상 후유증에서 완전히 벗어났다. 97년 입단하자마자 팔꿈치 통증으로 수술대에 올라야 했던 손민한은 프로 데뷔이후 처음으로 마음껏 공을 뿌리고 있다. 4차례의 시범경기에서 15이닝동안 단 1실점, 방어율이 0.60으로 전체 1위다. 삼진은 14개를 기록할 만큼 볼에 위력이 붙어 올시즌 롯데 마운드 주력 투수로 자리잡았다.

노장 조계현(두산)과 김상엽(LG), 박동희(삼성)의 재기 여부는 골수 야구팬들의 향수를 자극하고 있다. 90년대 중반까지 해태의 전성시대를 이끌었던 조계현은 지난 해 삼성에서 아무조건없이 방출될 만큼 퇴물로 평가 절하됐다. 그러나 국내 투수중 가장 다양한 변화구를 던져 '팔색조'라고 불렸던 조계현은 볼끝이 다시 꿈틀거리기 시작해 노장의 부활을 예고했다.

90년대 중반 삼성의 에이스였던 김상엽은 올시즌 LG 유니폼을 입고 허리 통증을 잊었다. 예전만큼 불같은 강속구를 던지진 못하지만 선발 한 자리를 차지할 만한 위력은 되찾았다. 매년 봄마다 희망가를 불렀지만 막상 시즌이 시작되면 실망감을 안겼던 박동희는 또 한번 기대치를 높이고 있다. 어느 해보다 시범경기에서 등판횟수가 많았고 투구이닝도 길어 삼성 코칭스태프가 올 해 만큼은 제 몫을 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서울=연합뉴스) 천병혁기자 shoeless@yonhap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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