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터니’ 국내 적응 잘 하려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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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교육개발원의 교육통계자료에 따르면 조기유학 후 국내로 복귀하는 학생(returnee) 수는 2008년 2만2262명에 달했다. 그러나 이들의 국내 적응을 돕는 프로그램은 전국 39개 초등학교와 중학교에 설치된 귀국학급(총 정원 455명) 외엔 전무한 실정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국내 적응에 실패해다시 해외로 발길을 돌리는 역(逆)리터니라는 신조어가 생길 정도다. 귀국학생들의 국내 적응 성공법을 알아봤다.

조기유학 간 후에도 한국 친구들과 관계 지속해야

임종헌(연세대 자유전공학부 1)씨는 4살 때와 초등 4학년 때 각각 2년씩 미국으로 조기유학을 다녀왔다. 귀국 후 새로운 학교생활을 꿈꾸며 서울의 한 일반중학교에 입학했지만 학교생활에 적응하는 게 순탄치 않았다.

시험에서 ‘네’라고 써야 할 대답을 ‘내’라고 적는 등 국어 맞춤법을 틀리기 일쑤였고 한자어가 익숙하지 않아 교과서의 어휘들을 이해하기 힘들어 했다.

암기 위주의 수업 분위기와 미국 학교와 비교해 2배나 많은 과제 분량도 임씨를 힘들게 했다. 쪽지시험과 중간·기말고사 모두 50점을 넘기기 힘들었다. “학교 친구들은 선행학습을 해 저만큼 앞서 있는데 나만 뒤처진 듯했어요. 자칫 외톨이가 될 수 있는 상황이었죠.” 그러나 임씨 옆엔 든든한 버팀목이 돼준 사람들이 있었다. 바로 유학을 가기 전부터 알고 지냈던 친구들이다. 임씨는 미국으로 떠나면서 친구들의 e-메일 주소를 모두 적어 갔다. 미국에서도 한국친구들과 정기적으로 연락하며 관계를 유지했다. 귀국 직후 다른 한국친구들과 사귀는 데도 그 친구들의 도움이 컸다. 교우관계가 넓어지면서 어려운 문제가 생겼을 때 고민을 털어놓고 도움을 구하기도 쉬웠다. 임씨는 “낯선 환경에 스스로 위축되고 자신감을 잃으면 간단한 문제도 어렵게 느끼게 된다”며 “문제가 생길 때면 주변에 도움을 요청하는 열린 태도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유학하는 동안에도 한국에 있는 친구들과 관계를 이어가고, 한국문화와 한국어 공부를 꾸준히 하는 것이 좋다”고 충고했다.
 

교우관계 넓혀주는 부모 역할도 중요

부모의 역할도 중요하다. 특히 자녀가 초등학생이라면 어린 나이에 새로운 환경에 부닥치는 데 따른 심리적인 불안감이 클 수 있다. 친구들이 친근함의 표시로 어깨를 툭 건드리는 행동을 귀국학생들은 자신을 싫어하거나 공격하는 행위로 받아들이기도 한다. 서울대사범대학부설초 이수연(40) 귀국부장교사(귀국학생 특별학급 총괄)는 “한국학생들의 문화를 자연스럽게 이해할 수 있는 자리를 만들어줘 이 같은 사소한 오해를 풀어 줄 것”을 당부했다. 자녀가 친구들과 자연스레 어울리도록 생일잔치를 열어준다든지 친구들과 함께 영화를 보도록 해준다든지 하는 게 한 방법이다. 친구를 초대해 같이 숙제를 하도록 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서울 언주중에서 귀국학생 관리상담 교사를 지냈던 박현일(32)씨는 “귀국학생들은 언어·문화적 차이 때문에 귀국학생들끼리만 어울리려는 경향이 강하다”며 “그런 또래문화가 심리적인 안정을 주긴하지만 자칫 학교에 적응하지 못하고 겉돌게 하는 원인이 될 수 있다”고 주의를 줬다.

장점 살리는 활동으로 자신감 키워야

박씨는 “중학교 이상 학생들은 국내복귀 후 입시 등과 관련해 성적에 상당히 민감하게 반응한다”고 걱정했다.

서울교대부설초 임성환(37) 귀국학생반 부장교사도 “많은 부모들이 학원은 어떻게 해야 하느냐는 질문부터 한다”며 “그러나 복귀 후 6개월 정도는 자녀가 부담 없이 적응할 수 있도록 해줄 것”을 부탁했다. 학교 과제물만 해도 이전보다 많은데 학원 과제물까지 더해지면 갑자기 늘어난 공부량에 학업스트레스만 쌓일 수 있다. 박씨는 “학업 부담을 주기보다 부족한 한국어 공부를 충분히 할 수 있는 시간을 갖게 하는 게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독서량을 늘리고 신문·칼럼 등을 읽으면서 정확한 한국어표현능력을 기르는 것도 필요하다. 귀국학생들은 주로 국어·사회 성적을 가장 고민한다. 독해능력이 부족해 시험시간 안에 긴 지문을 이해하고 풀기 어렵기 때문이다. 특히 서술형 평가 문제에선 맞춤법 실수 등 잘못된 국어표현으로 감점되는 경우가 많다. 임 교사는 “시험성적으로 위축될 때 뛰어난 영어실력 등 장점을 살리는 활동으로 자신감을 길러주는 것도 방법”이라고 권했다. 청심고를 졸업한 임종헌씨도 “영어공인시험 성적으로 자신감을 얻고 특기를 살려 외고나 국제고에 진학하겠다는 목표를 세우면 학교공부에 더 욕심을 낼 수 있다”고 말했다. 영어를 가르치는 봉사활동을 한다든지 국제행사에서 통역봉사를 하는 활동 등도 해볼 만하다.


[사진설명] 임종헌(연세대 자유전공학부 1)씨.

<정현진 기자 correctroad@joongang.co.kr 사진="황정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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