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포커스] 벤처와 대기업의 함수관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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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처기업이라는 것이 흔히들 위험요소가 많고 그래서 성공에 따른 보상도 매우 크지만 실패할 확률도 높은 기업이라고 일컫는다. 벤처기업이 우후죽순 생겨나고 있는 우리나라에서는 마치 벤처기업이 우리 미래에 유일한 대안인 것처럼 잘못 인식돼 무늬만 벤처라든가 굴뚝산업이라는 자조섞인 신조어들이 만들어지고 있다.

합리성과 높은 효율, 투명성 그리고 나눔의 문화 등으로 대변되는 벤처문화가 우리 사회 전역으로 확산되는 것은 매우 바람직한 일이다. 하지만 지금이 바로 벤처기업의 성공과 실패에 대한 정의가 필요한 시기인 것 같다.

벤처의 메카인 실리콘 밸리에서는 벤처기업을 스타트업, 즉 이제 막 시작한 기업이라고 부른다. 그 이유는 그들을 독립된 산업으로 분류하는 것이 아니라 기업 성장의 초기 과정에 있는 기업으로 인식하는 데 기인하는 것 같다.

이러한 신생기업의 성장과정을 보면 크게 두가지로 나눠진다. 우선 시스코나 야후와 같이 대형기업으로 성장하는 경우가 있다. 과거에는 대규모의 물리적 인프라를 가지고 있는 기업만 성공이 가능했다.

그러나 지금은 창업 초기기업에도 인터넷이 중심이 된 사회적 인프라의 도움으로 인해 급속하게 성장할 수 있는 길이 열려 있다. 바로 이러한 가능성 때문에 많은 젊은이들이 흥분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같은 경우는 극히 드문 사례로 마치 수많은 연예인 중에서 대중적 인기가 있는 스타는 극소수인 것에 비유될 수 있다. 또한 그러한 큰 기업으로의 변화는 창업자의 역할보다 전문가 그룹에 의해 전문적인 경영 노하우나 대규모의 자금이 동원돼 그야말로 다시 만들어진다고 봐야 한다.

기업의 역할도 완전히 바뀌어 초기에 기술 개발을 중시했다면 앞으로는 시장 즉 고객을 관리하고 그들의 요구에 빠르게 대응하는 전략, 시장 중심의 역할이 생존전략이 되는 것이다.

이러한 성공을 기대하는 것이 극히 이례적인 일이라면 일반적인 벤처기업의 성공모델은 바로 초기 기업으로서의 한계를 분명히 인식하고 창의적인 아이디어와 높은 효율을 바탕으로 시제품을 만들어 대기업에 미래가치를 인정받고 인수 또는 합병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사실 스타트업 즉 벤처기업은 시장을 확보하고 관리하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님을 인정해야 한다. 또한 시장을 가지고 있는 기업의 입장에서도 끊임없이 다양해지고 조급한 고객의 요구를 적기에 맞추는 것이 자체 개발 능력만으로 해결하기가 힘들다는 사실을 깊이 인식해야 한다.

그러면 양자간의 이해 관계가 잘 맞아떨어지게 되는 것이다. 예를 들어 A라는 거대기업이 경쟁우위를 가지려면 소비자의 요구를 파악하고 신속히 대응해야 한다.

그러자면 그에 필요한 기술은 수많은 벤처기업으로부터 구하는 것이 빠르다. 하지만 소비자를 관리한다는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 많은 것이 필요하다. 고객이 신뢰할 수 있는 브랜드, 마케팅, 영업망, 품질관리, 생산시설 및 관리, A/S망, 지적재산관리, 자금관리, 경영관리, 조직관리, 경험에 의한 노하우… 등등 이것은 벤처기업으로서는 감당하기 힘든 일이다.

따라서 벤처기업이 이 모든 것을 하겠다고 한다면 벤처기업이라고 볼 수 없다. 그러므로 벤처기업이 그들의 미래가치를 시장을 관리하고 있는 대기업에 파는 것도 하나의 성공으로 인정해주는 사회적 공감대가 시급히 필요한 것이다.

그래서 벤처기업은 만들어지고 또 인수 합병 등을 통해 흡수되는 순환과정을 거치면서 벤처기업가는 계속 벤처기업가로 남아있을 수 있게 해야 한다. 우리는 그를 성공한 벤처기업가로 높이 인정해 주어야 한다.

그러므로 현 시점에서 벤처기업이 좋은 시제품을 가지고 그들 스스로 직접 시장에 나서는 무모함을 버릴 수 있도록 그들의 초기 가치를 인정하는 깨어 있는 대기업이 우리에게 매우 필요한 시점이다.

벤처기업 또한 자신들이 역량을 분명하게 구분해 무모한 투자와 확장을 통해 미숙한 경영으로 투자자들에게 피해를 주어서는 안될 것이다.

따라서 한시적인 회사 운영을 통해 초기 사업 목표가 달성되지 않을 경우 과감히 회사를 정리하는 용기가 필요하다. 투자자들 역시 이들의 무모한 확장을 막고 실패를 인정해 주고 새로운 출발을 도와야 한다.

실리콘 밸리에서 실패한 경영자들의 실패 경험을 높이 평가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무모한 확장 이전에 실패하는 벤처기업이 도처에서 나올 때 그들의 새로운 도전이 가능할 것이며, 우리의 벤처산업은 건전하게 발전할 것이고 그것이 결국 우리나라 전 산업에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한다.

전하진<한글과컴퓨터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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