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주의 추억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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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8호 33면

‘모든 국민을 자본가로!’
1980년대 초 마거릿 대처 총리의 영국 보수당 정권은 이런 슬로건을 내걸고 ‘국민주(國民株)’ 공급에 박차를 가했다. 영국석유(BP)를 필두로 통신·철도·가스 등 10여 개 공기업을 민영화하면서 그 주식들을 국민에게 할인가격으로 대량 공급했다.

김광기의 시장 헤집기

국민주 보급은 공기업 민영화와 중산·서민층의 재산 형성, 증시 투자 저변 확대 등 일석삼조를 겨냥했다. 특히 복지혜택의 축소에 따른 국민의 불만을 누그러뜨리려는 정치적 의도가 컸다.

반응은 뜨거웠다. BP 국민주의 경우 83년 200만 명이 청약하더니 87년 추가 매각 때는 무려 940만 명이 몰렸다. 당시 증시 활황과 맞물려 국민주에 앞서 투자했던 사람들이 큰 재미를 봤다는 소식이 퍼진 결과였다.

영국 정부는 “전 국민이 국가 기간산업의 주주가 되는 시대가 열렸다”며 흥분했다. 그러나 언론은 “길거리의 모든 행인을 주식 투자자로 만들어 어쩔 셈이냐”고 비판했다. 우려는 현실로 돌아왔다. 89년 이후 증시 버블이 붕괴하면서 막차를 탄 투자자들이 큰 손실을 봤다. 놀란 사람들은 주식을 던졌고, 그 주식은 외국인과 기관투자가들의 수중으로 헐값에 넘어갔다.

일본의 경우는 훨씬 참담했다. 일본 정부는 버블 경제의 막바지인 87년 일본전신전화(NTT) 주식을 국민주로 내놓았다. 주당 120만 엔에 공급된 주식의 가격은 300만 엔까지 치솟았다. 그러나 1년도 못 가 하락세로 기운 뒤 90년 이후로는 공모가 대비 반 토막이 났다.

한국도 국민주의 아픈 추억을 갖고 있다. 88년 노태우 정부 시절 공기업이던 포항제철 주식을 국민주로 팔았다. 330만 명이 7주씩 배정받았다. 주식은 1만5000원에 공급됐는데 상장 직후 2만5000원까지 올랐다. 정부는 다음 해 한국전력도 국민주로 내놓았다.

그러나 한국 역시 결과는 좋지 않았다. 상장 직후 매각한 사람들이 1인당 최고 7만원 안팎의 차익을 남겼을 뿐, 계속 보유한 투자자들은 5년 넘게 고생했다. 국민주를 계기로 주식 맛을 봐 다른 주식에까지 손댔다 큰 손해를 본 투자자가 속출했다. 그래서 “국민주가 궁민주(窮民株) 됐다”는 탄식이 나왔다. 한국의 국민주도 90년대를 거치며 대부분 외국인 투자자 손으로 넘어갔다.

세계 어느 나라든 국민주는 실패작이었다는 평가가 우세하다. 중산·서민층의 재산형성이든, 국가 기간산업의 안정적 소유구조든 어느 하나의 목적도 달성하지 못했다는 지적이다. 이 때문인지 90년대 이후 국민주를 공급한 나라는 없다. 대신 공기업 주식을 제값 받고 판 뒤 그 돈을 복지 재원 등으로 직접 활용하는 추세다.

홍준표 한나라당 대표가 우리금융 민영화 방안으로 국민주를 주창했다. 저소득층 600만 명에게 주식을 할인 공급하자는 내용이다. 계산해 보니 1인당 32주, 차익은 13만원씩 돌아간다. 주가가 떨어지면 얘기는 또 달라진다. 홍 대표가 국민주의 역사가 남긴 교훈을 되새겨봤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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