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 칼럼] 스캘퍼 잡으려다 증시 잡을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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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8면

강병호
한국기업지배구조원장
한양대 명예교수

지난 6월 말 검찰이 주식워런트증권(ELW) 거래와 관련해 스캘퍼(초단기 매매자), 전·현직 증권사 직원, 증권사 대표이사 및 핵심 임원 등 48명을 무더기로 기소했다.

 검찰의 기소장을 보면 스캘퍼는 증권사가 제공한 전용선(DMA)을 통해 일반 투자자보다 더 빠른 매매 주문·체결과 우월한 정보 제공을 바탕으로 부당한 시세차익을 얻었다고 한다. 또는 증권사는 이런 서비스를 제공하는 대가로 수수료 수입을 얻고 시장점유율을 올리는 등 부당이익을 챙겼다는 것이다.

 문제는 우리나라 증권사가 제공하는 전용선 서비스가 최근 선진국에서 급속하게 팽창하고 있는 DMA 서비스와 같은 성격이냐는 것이다.

DMA는 정보기술(IT) 발달에 따른 주문의 전산화·자동화 과정에서 진화된 산물로 증권이나 파생상품 등의 매매체결에 있어 거래소에 접근 권한이 있는 증권사의 주문 처리를 거치지 않고 투자자가 직접 주문을 처리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말한다. 주문집행의 편리성·신속성, 주문수수료의 저렴성, 주문정보의 보안성 등의 장점으로 인해 고빈도 매매와 알고리즘 매매를 하는 대형 투자자들이 주로 이용하고 있다.

 따라서 우리 증권사들이 제공하는 전용선 제공 서비스가 선진국에서 말하는 DMA 서비스와 같은 성격이라면 전용선 제공 그 자체만으로 부당한 특혜를 주었다고 말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검찰의 시각은 스캘퍼에게 제공되는 매매처리의 신속성이나 정보의 우월성 등을 고려할 때 일반 투자자들의 손실을 바탕으로 제공된 부당한 특혜라는 것이다.

 우리나라 증권사가 제공하는 전용선 서비스가 이미 글로벌 스탠더드가 된 DMA 서비스와 같은 성격인가, 스캘퍼에게 제공된 전용선 제공 서비스로 인해 스캘퍼가 ELW 거래에서 일반투자자들에게 손해를 끼치고 이익을 실현했는가 등은 앞으로 재판과정에서 밝혀질 것이다.

 다만 검찰의 주장이 사실이라고 하더라도 본건이 증권사들에 도의적이거나 행정적인 책임을 넘어 형사적 처벌까지 가해야 하는 사안인가에 대해서는 더욱 신중한 판단이 필요하다. 설사 증권사의 편의 제공이 관련법에 위배된다고 하더라도 증권사들이 그들의 행위가 죄가 되지 않을 것으로 착오를 일으킨 정당한 이유가 있는 경우에는 형법에서 규정한 법률의 착오에 해당될 수 있다는 견해도 있다.

 그러나 더 큰 문제는 전용선 사건이 비단 ELW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선물·옵션 및 현물시장과도 연계돼 있어 사법처리 결과에 따라서는 자칫 시장 전체 거래시스템의 문제로 확대됨은 물론 우리나라 자본시장에 대한 국제적인 인식의 변화로 연결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본 사안은 단순한 법리적 차원을 넘어 자본시장에 미치는 파급효과를 고려해 더욱 신중하게 접근할 필요가 있다. 본건의 핵심적 사항인 전용선 문제만은 사법적 처리에 앞서 감독 당국의 행정적 지도나 제재가 선행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것이다. 이와 함께 유동성제공자(LP) 호가의 공정성 제고, 실질적인 위험고지 절차 마련 등 공정하고 건전한 시장 환경을 조성하고 개미 투자자를 보호하기 위해 더 강화된 제도 개선책을 마련해야 한다. 거래집행 후 내부자거래·시세조종 등 불공정거래의 추출, 매매심사를 더 강화하고 필요에 따라 적절한 조치를 취할 수 있는 DMA 관련 규정을 명확히 제시하는 것도 필요하다.

강병호 한국기업지배구조원장 한양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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