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승연 평창유치위 대변인이 말하는 설득의 비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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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OC위원들을 설득할 수 있었던 ‘말의 힘’은 2018명의 합창단이 준 감동에서 나왔어요.” 한국시각으로 6일 밤, 남아프리카공화국 더반에서 2018년 평창 겨울올림픽 유치가 결정되던 순간 나승연(38) 평창유치위 대변인은 2월 IOC 실사단으로 평창을 방문했던 때를 기억했다. 강원도민 2018명이 강릉 컬링장에서 아바의 ‘I have a dream’이라는 노래를 불렀는데 겨울올림픽을 유치하겠다는 그들의 간절함이 멋진 하모니를 만들어냈다. “그때 느낀 감동으로 발표 중간중간 감정을 살릴 수 있었어요.”

글=박정현 기자
사진=김진원 기자

나승연 대변인은 “상대방을 설득하기 위해서는 감정 조절을 잘 하고, 상대의 성향을 미리 알아두면 효과적”이라고 강조했다. [김진원 기자]

나 대변인은 이번 프레젠테이션을 준비하며 감정을 적절히 조절하는 데 특히 신경을 썼다. 앵커와 MC 활동을 오래하다 보니 말할 때 뉴스를 읽어 내려가는 것처럼 건조하다는 지적을 받았기 때문이다. 감정이 필요한 순간마다 나 대변인은 ‘그날’의 하모니를 떠올렸다. 이처럼 감동적이라고 생각하는 어떤 이미지를 떠올려 목소리와 표정에 자연스럽게 감정이 묻어나게 하는 방법을 ‘이미지 떠올리기(imaging)’라고 한다. 나 대변인은 “조양호 위원장은 2018년 평창에서 올림픽이 열리는 모습을 가정해 떠올렸다더라”고 전했다. 그렇다고 지나치면 역효과를 낼 수 있다. “리허설 때 감정이 복받쳐 잠시 말문이 막히기도 했다”는 나 대변인은 “실전에서는 경쟁 도시를 생각하며 냉정을 찾았다”고 말했다.

강조할 단어나 문장은 따로 표시하며 연습

나 대변인은 ‘TPO(Time·때, Place·장소, Occasion·상황)를 고려한 말하기’도 주효했다고 꼽았다. 이번에 평창은 세 후보지 중 발표 순서가 마지막이었다. 청중의 집중력이 떨어질 수 있는 상황이었다. 나 대변인은 강조할 단어나 문장을 다른 문장보다 더 강하게 말하거나 크게 혹은 천천히 말했다. 말의 단조로움을 없애 원하는 메시지를 쉽고 정확하게 전달하기 위해서였다. 나 대변인은 “목소리 톤을 과장하거나 감성을 적절히 담는 것도 사람들의 관심을 끄는 데 효과적”이라고 조언했다.

상대의 성향이나 선호하는 어휘, 메시지를 미리 알아두는 것도 잊지 않았다. “제가 3남매 중 막내라 원하는 것을 얻으려면 어려서부터 설득을 해야 했어요. 엄마에게는 눈물 작전으로 감성에 호소하고, 아빠에게는 나름의 논리를 폈어요. 결과요? 성공이었죠.” 나 대변인은 영어 실력이 원어민 수준이 아닌 IOC 위원이 더러 있다는 사실에 주목해 또박또박 말하려고 애썼다. 중간중간 중요한 부분에서 말을 잠시 쉬어 위원들이 메시지를 충분히 이해할 수 있도록 시간을 줬다. 그리고 위원들로부터 눈을 떼지 않았다. “대본을 완벽하게 외워 IOC 위원들과 일대일로 대화하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말하려고 노력했죠.”



어떤 질문에도 전하려는 메시지 연결시켜야

‘프레젠테이션의 여왕’으로 불리는 그이지만 어려서부터 말을 잘했던 것은 아니다. 캐나다에서 고등학교를 다닐 때 연설 방법 등을 배우는 ‘퍼블릭 스피킹’이란 과목 성적이 형편 없었다. 떨려서 말을 잘 못하고, 무슨 말을 해야 할지도 몰랐다. 그러다 한국에서 대학을 다니며 영어 말하기 동아리 활동을 했는데 그때 다른 학교를 돌아다니며 야외에서 연설을 해야 했다. 시사 주제에 대해 3분짜리 원고를 쓴 후 읽기 편하도록 강조할 단어나 쉬어야 할 부분 등을 표시하며 연습했다. 야외 연설을 계속 하자 말투, 표정, 시선 처리가 자연스러워졌다. 나 대표는 “당시 일주일에 6시간씩 야외 연설을 했다”며 “사람이 많은 곳에서 하다 보니 말하는 재미가 느껴지고 자신감도 생겼다”고 말했다.

나 대변인은 “감정을 앞세워 말하면 메시지를 제대로 전달하지 못하고 상대의 감정만 상하게 하기 십상”이라며 “남을 설득하고 싶다면 감정을 절제하며 자신이 원하는 것을 생각하라”고 조언했다.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주거나 행동과 말이 일치하면 더 설득력 있다는 것이다. 면접을 보거나 토론을 할 때 생기는 돌발 상황에 대해선 “어떤 질문을 받든 긴장하지 말고 자신이 전하려는 메시지를 연결시켜 대화를 이끌어갈 것”을 당부했다. “‘나’가 아닌 ‘상대방’에 초점을 맞춰 말하면 훨씬 설득력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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