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휘발유값 폭등 대선 쟁점화

중앙일보

입력

미국 휘발유(가솔린) 값이 폭등하면서소비자단체들이 주유소 보이콧 운동을 추진하고 공화당이 집권 민주당의 대책마련을 촉구하는 등 선거 쟁점으로 급부상하고 있다.

미 휘발유가격은 석유수출국기구(OPEC)의 감산조치로 공급이 달리면서 보통 가솔린의 전국 평균이 갤런당 1.50달러로 작년 2월보다 91센트나 폭등했으며 휴가시즌인 올 여름께는 1.80-2달러까지 치솟을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이에 따라 캘리포니아주 샌디에이고의 한 소비자단체가 웹사이트와 전자메일(e-메일)을 통해 4월7-9일 주유소에서 기름을 넣지말자고 호소하고 나서는 등 시민들의 불만도 점차 노골화되고 있다.

캘리포니아의 또다른 소비자단체도 주 정부에 기름값 안정 대책을 촉구하기 위해 15일 하루동안 주 전역에서 가솔린 불매운동을 벌일 것을 촉구했다고 CBS방송은 전했다.

주유소 보이콧에 대해 이들 소비자단체 단체는 "휘발유값이 천정부지로 뛰면서가계와 기업들이 재정압박을 받고 있는데도 당국이 별다른 대책을 세우지 않는 데대한 소비자들의 분노를 표시하기 위한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미 주유소업자들의 협의체인 SSDA의 로이 리틀필드 사무국장은 기름 소비량이 가격 폭등 전이나 후나 별 차이가 없다면서 가격은 OPEC와 대형 정유사에 의해 결정되기 때문에 보이콧이 별 효과가 없을 것으로 전망했다.

에너지부 산하 에너지정보국(EIA)도 OPEC가 이달 말 증산을 결정하더라도 미 석유재고량이 적기 때문에 5월말까지는 가격이 인하되지 않을 것이라며 소비자들이 가격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유일한 방안은 차를 덜 몰고 휘발유 수요를 줄이는 것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정치권의 사정은 주유소들처럼 `배짱'을 부릴 만큼 여유가 있지 못하다.

8개월 앞으로 다가온 대선과 총선을 앞두고 유권자를 의식해야 하기 때문이다.

공화당은 갤런당 4.3센트인 가솔린 소비세를 폐지하고 알래스카 유전 등지에서의 증산할 것을 정부에 촉구하고 있으며 공화당 대선후보인 조지 W. 부시 텍사스 주지사도 이를 적극 검토중인 것으로 미 언론은 전했다.

가솔린 소비세 부과안은 지난 93년 상원에서 민주당의 앨 고어 부통령(상원의장겸임)이 가부동수에서 캐스팅 보트를 행사, 통과된 것으로 현재 의회를 장악중인 공화당으로서는 고어도 공격하면서 민심을 얻을 수 있는 `호기'로 보고 있다.

반면 민주당 대선후보인 고어 부통령은 가솔린 소비세가 고속도로 건설 및 교통체증 완화 등을 위한 기금마련을 위한 것이라는 등의 이유로 폐지에 반대하고 있다.

`환경 전문가'임을 강조해 온 고어로서는 소비세 폐지 및 증산으로 자동차 운전과 기름 소비가 늘 경우 환경이 악화될 것이라는 환경보호단체들의 경고도 무시할수 없는 입장에 있다.

빌 리처드슨 에너지부장관도 현재의 유가 인상은 원유 부족에 따른 것이므로 소비세 잠정폐지가 기름값이 인하에도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며 폐지에 부정적 반응을보이고 있다.

리처드슨 장관은 또 빌 클린턴 대통령이 전략적 비축석유의 방출 가능성을 언급한 데 대해 '이는 누군가 조언을 잘못한 것'이라며 비축석유 방출로 기름값이 일시적으로는 안정되겠지만 원유수입이 중단될 경우 대처수단이 없다고 주장했다.

민주당으로서는 공화당에 비해 유가인상을 제어할 뾰족한 수단이 없는 게 고민이다. 클린턴 대통령은 급기야 백악관으로 정유업체 대표들을 불러 유가인하를 당부했으나 최근 폭등세로 보아 효과는 없는 듯하다.

해리티지 재단의 정치분석가인 마샬 위트먼은 기름값 폭등이 올 여름 '빅 이슈'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로스앤젤레스=연합뉴스) 권오연특파원 coowon@ao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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