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돼지밥통을 걷어차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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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김종윤
내셔널 데스크

매년 되풀이되는 막장 드라마 한 편. 10월부터 국회는 다음해 예산안 심의 때문에 떠들썩하다. 기획재정부는 국무회의를 거쳐 10월 2일까지 정부 예산안을 국회에 제출한다. 국회는 다음 회계연도 개시 30일 전인 12월 2일까지 예산안을 의결해야 한다.(여야는 대부분 이 기한을 지키지 않는다. 입법기관이 법을 지키지 않는 게 다반사다.)

 이 기간 동안 온갖 추잡한 협상이 진행된다. 예산 넣고 빼기다. 지난해만 해도 여야는 4대 강 예산 등을 놓고 격렬하게 충돌했다. 한나라당 김성회 의원과 민주당 강기정 의원은 주먹다짐까지 벌였다. 일부는 응급차에 실려가기도 했다. 이렇게 난장판이었지만 속내를 보면 다르다. 날 선 대치를 하면서도 여야 의원들은 틈틈이 ‘쪽지’를 재정부에 전달했다. ‘지역구 사업 증액 요구서’다. 예산심의 기간에 의원들은 지역구에 다리 놓고, 체육관 짓는 예산 등을 정부에 전달해 반영시킨다. 지난해만 해도 한나라당이 야당 요구까지 합해 정부에 전달한 쪽지 액수만 20조원이 넘었다. 이게 다 반영된 것은 아니지만 불필요한 선심 예산이 꽤 들어갔다. 이런 행태가 돼지밥통(포크 배럴)이다. 나라 곳간이 비든 말든 표를 얻기 위해 자기 지역 예산만 챙기는 작태를 말한다.

 이 돼지밥통, 왜 생겼는지 곰곰이 따져봐야 한다. 의원들은 이렇게 슬쩍 끼워넣은 예산을 승전보라도 되는 양 지역에 알린다. 웃지 못할 방법까지 동원한다. 2006년 초 이런 돼지밥통 행태를 비판하는 기사를 썼다. 파렴치한 의원들의 실명을 공개했다. 몇몇 의원과 보좌관들로부터 연락이 왔다. “기사 잘 봤습니다. 고맙습니다.”

 의원 비판 기사가 지역에서는 의원의 활약상으로 둔갑했다. 언론의 비판을 사면서까지 지역을 위해 돈을 당겨왔다는 칭찬이 여기저기서 나왔다. 돼지밥통의 문제는 이런 구조 때문에 생기는 것이다. 이런 예산, 모두 국민 세금이다. 세금이 낭비되건 말 건, 나랏빚이 늘건 말 건, 우리 동네 예산만 많이 따오면 표를 주는 유권자의 의식이 문제다.

 박재완 재정부 장관이 포크 배럴에 맞서 재정규율을 확립하겠다고 하자 여야 의원들이 발끈했다. “국민 요구에 귀를 막는 자폐증적 사고에서 나온 망언”(김진표 민주당 원내대표), “사과하지 않으면 국회에 불러 책임추궁 하겠다”(김성태 한나라당 의원). 말 참 고약하다. 이들에게 묻고 싶다. “내년 예산심의 때 돼지밥통으로 뛰어가지 않겠다는 선언은 왜 안 하나.”

 거의 안 쓰는 거대한 체육관 생기고, 달릴수록 적자 쌓이는 경전철 들어섰다고 살기 좋은 곳 되지 않는다. 당장은 그럴싸해 보이지만 빚이 쌓이면서 나라살림 거덜나 쪽박 찰 수 있다. 그 고통은 자식들에게도 대물림된다. 내년 4월에 새 국회의원을 뽑는다. 12월에는 대통령 선거도 있다. 현명한 유권자가 누군가. 내가 낸 세금 제대로 쓰이는지 감시하는 사람이다. 이제 돼지밥통을 걷어차라.

김종윤 내셔널 데스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