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일기] ‘ELW 사태’ 모르쇠 하는 거래소·금투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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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8면

손해용
경제부문 기자

유명 증권사 대표 12명이 ELW(주식워런트증권) 불공정 거래 혐의로 한꺼번에 기소됐다. 이 정도면 증권시장 전체가 법정에 서는 것이나 다름없다. 이런 사상 초유의 사태에도 애써 ‘모르쇠’로 일관하는 증시 유관 기관들이 있다. 한국거래소와 금융투자협회다.

 공정한 거래와 투자자 보호에 앞장서며(거래소), 금융투자업계의 목소리를 대변하는(금투협) 증시의 핵심 기관들이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회비는 꼬박꼬박 받아가면서 필요할 때는 입을 다물고 있다”며 “속 터질 노릇”이라고 말했다.

 검찰의 비난처럼 스캘퍼와 증권사가 ‘노름꾼’이었다면 ‘멍석’을 깔아준 게 바로 거래소다. 거래소는 ELW 거래 때마다 수수료를 떼간다. 스캘퍼가 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75%인 점을 감안하면, 거래소는 지난해 스캘퍼들로부터 100억원이 넘는 수수료 수입을 올린 것으로 추정된다. 일반투자자를 위한 시장 안정 조치는 소홀히 한 채 스캘퍼를 통해 수수료 수입을 늘려온 셈이다. 스캘퍼들이 유리한 조건에서 거래하는 사실을 알고서도 사실상 이를 방조했다는 비난도 나온다.

 하지만 거래소는 대책을 내놓거나 유감 표명도 없이 입을 다물고 있다. 사실 ELW가 개인들의 ‘무덤’으로 전락한 것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증시를 관리·감독하는 거래소가 의지만 있었다면 사건이 검찰로까지 가지 않을 수도 있었다. 일반투자자들이 거래소의 해명을 듣고 싶어 하는 이유다.

 금투협도 마찬가지다. 한 증권사 임원은 “회장이 직접 나서서 해명하라고 요청했는데도 외면하고 있다”며 “금투협이 입을 다무는 동안 증권사의 신뢰는 그만큼 추락하고 있다”고 하소연했다. 사장단이 기소된 후에야 뒤늦게 각 증권사 법무팀을 모아 회의를 하고 있는 게 고작이다. “증권사마다 방어논리와 이해관계가 다르기 때문”이라는 게 금투협의 해명이지만 설득력이 떨어진다는 게 업계의 반응이다.

 ELW 시장을 투기판으로 놔둘 수는 없다. 그렇다고 ELW 시장을 죽일 수도 없다. 당사자들이 적극적으로 의견을 내고 이를 조율하면서 제도를 고쳐가야 한다. 그런데도 증시의 두 버팀목인 거래소와 금투협은 회원 증권사들의 고통을 나 몰라라 하고 있다. 자칫 ‘소도 잃고 외양간까지 못 고치는’ 우를 범할까 걱정이다.

손해용 경제부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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