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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의 눈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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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글렌 벡(Glen Beck)은 보수적인 색채의 폭스뉴스채널에서도 특히 색깔이 도드라졌던 뉴스 진행자. 그는 2009년 3월 13일 자신의 이름을 딴 뉴스쇼 ‘글렌 벡’을 진행하던 도중 두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한 채로 “나는 정말 조국을 사랑한다”고 말해 시청자를 놀라게 했다. 한때 “오바마는 백인 중심의 문화를 혐오한다”고 주장했던 그였다.

 벡은 이 눈물에 대해 “당시 나는 저널리스트가 아니라 나라의 앞날을 걱정하는 한 남자였을 뿐”이라고 해명했지만 찬반 양론은 그치지 않았다. 대량 학살이나 지진, 전쟁 등을 전하던 앵커들이 감정을 억제하지 못하는 경우는 간혹 있었어도 ‘애국심을 호소하며 눈물을 흘리는’ 뉴스 진행자는 흔치 않았기 때문이다. 유튜브에는 그의 이런 행태를 ‘악어의 눈물’이라고 비꼬는 패러디 동영상까지 등장했다. 눈물은 아니지만 ‘감정 억제’에 실패해 물의를 빚은 앵커는 또 있다. 미국 CBS 뉴스의 전설적인 앵커 댄 래더는 1987년 9월 11일, 생방송 도중 6분 동안이나 자리를 비우는 대형사고를 터뜨렸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미국 방문을 알리는 뉴스가 여자 테니스 중계를 위해 잘려 나가자 다혈질이었던 래더가 벌컥 화를 내며 자리를 박차고 나간 것이다.

 테니스 경기가 예상보다 일찍 끝나 뉴스가 재개됐지만 래더의 앵커석은 6분 동안 비어 있었다. CBS 뉴스를 받아 방송하는 미국 전역 방송사들은 “래더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이냐”는 문의 전화를 받느라 진땀을 뺐다. 이런 사고에도 ‘스타 앵커’ 래더는 아무 영향을 받지 않았지만 이 행동은 두고두고 그의 자기 통제력에 대한 비판 근거로 사용됐다.

 국내에서도 평창 겨울올림픽 개최 결정 소식을 알리던 한 여성 앵커가 감격을 감추지 못하고 눈물을 흘려 논란의 대상이 됐다. 일각에선 “뉴스 진행자로서 감정 조절에 실패한 건 자질 부족”이라는 주장이 있었던 반면 “나도 함께 눈물을 흘렸다”는 의견도 많았다.

 한때는 어떤 사태에도 냉정을 잃지 않았던 월터 크롱카이트와 같은 진행자가 환영받았지만 그것이 앵커의 유일한 길은 아니다. 오늘날에 와선 오히려 세상과 함께 기뻐하고 슬퍼하는 진행이 더 환영받는 분위기도 감지된다. 단 그 감정이 국민 대다수에게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것이라면, 그것이 제대로 된 직무수행이 아니라 말할 사람도 없을 것이다. 

송원섭 jTBC 편성기획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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