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프트웨어의 결함이 사용자의 책임?

중앙일보

입력

소프트웨어를 구입할 경우에는 라이센스 계약서를 반드시 차근차근 읽어볼 일이다. 컴퓨터 이용자라면 누구나 대화 상자 안에 나오는 계약서를 읽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대부분은 읽지 않고 “계속” 버튼을 클릭하기 마련이다.

이 계약서가 무슨 내용인지 알면 적지 않게 놀랄 것이다. 대부분의 계약서 내용은 정형화되어 있다. 계약 상의 갑과 을을 정의하는 난해한 법률 용어들부터 얼른 알 수 없는 용어들을 늘어놓는 것이다. 여기에는 소프트웨어의 이용자의 설치할 수 있는 컴퓨터 대수를 까탈스럽게 따지고 있는 부분도 있고, 불법 복제에 대한 협박(?)도 있다.

그런 다음 제품 보증 부분이 나오며 지난 몇 년간 추가된 사항들이 나온다. 이것은 제품 보증에 더 이상 책임이 없다고 하는데 악용되기도 했다. 지금은 마이크로소프트를 비롯해서 대부분의 업체들이 구입 후 90 일 이내에 제품에 결합이 발견되면 교체해주거나 환불해주고 있다. (마이크로소프트는 하드웨어의 경우에는 이 기간을 일년으로 보장하고 있다) Netscape Communicator와 같은 일부 무료 소프트웨어는 아직도 과거의 제품 보증 내용을 쓰고 있다. 사용자가 제품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하는 것이다.

지금은 소프트웨어의 제품 보증을 소비자의 당연한 권리라고 생각하지만, 사실 이 권리는 소비자 단체들이 몇 년 동안 항의 운동과 캠페인을 벌인 끝에 얻어낸 것이다. 하지만 아직도 소프트웨어의 결함으로 컴퓨터나 시스템 상의 다른 소프트웨어 또는 데이터에 생긴 피해에 대해서는 업체가 책임을 지지 않고 있다.

윈도우 98의 라이센스 조항을 살펴보자 "제품의 사용 과정에서 또는 사용자의 실수로 생긴 피해에 대해서 어떤 경우라도 제조 업체나 판매 업체가 책임을 지지 않는다. 그런 사고에 대해 제조 업체나 판매 업체가 미리 통보한 경우에도 마찬가지이다.”

이 말을 풀어보면 이런 것이다. "우리는 제품에 보안 상의 결함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해커가 그 결함을 이용해서 시스템에 침입하거나 파일을 지워버리는 경우에도 우리에게는 아무 책임이 없다."

사실 이런 사고까지 책임지겠다고 하는 순해 터진(?) 소프트웨어 업체가 있을 리 없다. 그렇게 했다가는 소프트웨어의 가격이 병원 입원료처럼 올라갈 것이다.

문제는 소프트웨어 업체들이 이런 문제에 대해 책임있는 태도를 보이지 않고 있다는데 있다. 2월 초 버지니아 주 하원 의회는 만장 일치로 컴퓨터 및 정보 트랜잭션에 관한 법(UCITA - the Uniform Computer Information Transactions Act)을 통과시켰다. NCCUSL(National Conference of Commissioners on Uniform State Laws)가 입안한 이 법은 애플리케이션을 외주나 호스팅 형태로 사용하기도 하는 최근 현실을 반영한 것이다. 이 법은 소프트웨어 계약서를 보편적인 언어로 작성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자세한 내용은 http://www.nccusl.org와 www.2bguide.com 참조).

하지만 이 법률은 소프트웨어 업체들이 소프트웨어의 결함으로 인한 피해-그 결함이 알려진 것이라고 해도-에 대한 책임을 피할 수 있게 해주고 있다. 최근 인터넷을 떠들석하게 했던 서비스 부정 어택과 윈도즈 2000의 무수한 결함에 대해서는 오히려 UCITA 가 소비자에게 장애가 될 것이다.

다른 산업 분야 업체의 계약서가 소프트웨어 업체와 같은 식이라면 어떻게 될까? 빌 게이츠와 자동차 업체의 간부가 주고 받은 농담이 생각난다.

빌 게이츠가 말했다. “자동차가 PC처럼 가격이 떨어진다면 한 대당 천 달러 정도가 될 것이다.” 그러자 그 간부는 “맞는 말이지. 하지만 그랬다가 하루에 두 번씩 망가지게 되면 어떻게 감당하라고…”

- Scot Petersen, PC Wee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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