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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준규 총장, 물러날 타이밍 놓쳤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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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김준규 검찰총장이 1일 저녁 세계검찰총장회의 폐막 만찬장에 들어서다 사진기자들의 플래시가 터지자 “사진 찍지 마세요”라고 말하며 차려 자세를 취한 채 움직이지 않고 있다. [김형수 기자]

“김준규 검찰총장은 물러날 기회를 놓쳐 버렸다.”

 4일로 예정된 김준규 검찰총장의 거취 표명과 관련해 1일 검찰의 한 간부가 내린 촌평이다. 대검의 검사장급 부장 전원을 포함해 검찰 간부들이 줄줄이 사의를 표명했던 지난달 29일 과감하게 사의를 밝혔어야 했다는 게 이 간부의 지적이다.

그는 “실제 당시 일부 검찰 간부가 김 총장에게 ‘지금 사표를 던져야 한다’고 조언했지만 김 총장이 결단을 내리지 못했다”며 “4일 김 총장이 사표를 낼 것이라고 발표할 가능성이 크지만 이제는 의미도 명분도 약해졌다”고 말했다.

 이 간부의 지적은 현재 김 총장의 고민을 투영하고 있다. 김 총장은 사표를 내기도, 자리에 머물러 있기도 애매해진 상황이다. 일단 사표 제출이 예상보다 어려워졌다. 사표 제출의 실익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형소법 개정안이 지난달 30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해 버린 상황에서 김 총장이 사표를 낸다고 해서 개정안이 재수정되는 것도 아니라는 얘기다.

 이명박 대통령의 만류도 부담이다. 김 총장은 지난달 30일 이 대통령에게 “책임을 져야 할 것 같다”고 말했지만 이 대통령은 “그런 나쁜 전통을 만들지 말고 남아서 사태를 책임지고 수습하라”고 지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아예 말을 하지 않았다면 몰라도 인사권자로부터 분명한 반대의사를 들은 이상 거부하기가 만만치 않은 상황이다.

 그렇다고 제자리에서 8월 19일까지인 남은 임기를 마치는 것도 면구스러운 일이다. 당장 검찰 수장이 식언을 했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워진다. 사의를 표명한 다른 검찰 간부들에게 복귀 명분도 줘야 한다. 현재 법무부와 검찰은 홍만표 대검 기획조정부장의 사표를 수리하지 않고 병가로 처리한 상태다. 1일 수술이 예정된 홍 기조부장이 건강을 회복하면 언제라도 돌아올 수 있도록 배려한 것이다. 하지만 그의 복귀와 다른 간부들의 사의 철회가 정당성을 얻기 위해서는 역시 수장이 책임지는 모습을 보이면서 이들에게 명분을 줄 필요가 있다.

 이 때문에 검찰 안팎에서는 김 총장이 일단 사표를 내되 이 대통령이 사표 수리를 미루는 형식으로 모양새를 갖출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마침 이 대통령이 2일부터 11일까지 해외 순방길에 오르기 때문에 김 총장의 사표 수리에는 상당한 시간이 소요될 수밖에 없다. 이렇게 되면 청와대에서는 후임자 선정작업을 할 시간을 벌 수 있고 김 총장도 어느 정도 명분을 가질 수 있게 된다.

 김 총장은 2009년 8월 천성관 총장 후보자의 중도 낙마사태 이후 총장에 깜짝 발탁됐다. 이후 2년에 가까운 시간 동안 새로운 수사 패러다임의 제시 등 일련의 개혁 정책을 시도했지만 전반적으로 좋은 평가는 받지 못했다. 특수나 공안부서 근무 경험이 적은 비주류로 조직 장악력이 부족했던 데다 말실수로 구설에 오르는 경우도 적지 않았던 것이다. 수사조정권 과정에서 보여 준 것처럼 검찰 조직의 유연성 부족도 김 총장의 실험을 실패하게 한 요인으로 지적되고 있다.

글=박진석 기자
사진=김형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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