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CCW. 홍콩텔레콤 인수 뒷애기

중앙일보

입력

홍콩과 싱가포르간 자존심 대결로 치달았던 ''홍콩텔레콤 인수전'' 은 29일 홍콩측의 완승으로 끝났지만 경쟁과정에서 흥미로운 뒷얘기를 많이 남겼다.

직접 맞붙은 것은 홍콩 ''퍼시픽 센추리 사이버웍스(PCCW) '' 와 싱가포르 텔레콤(싱텔) 이었다. 그러나 두 회사의 오너가 홍콩 제일의 갑부 리카싱(李嘉誠) 의 차남 리쩌카이(李澤楷) 와 리콴유(李光耀) 전 싱가포르 총리의 차남 리셴양(李顯陽) 이었다는 점에서 이번 인수전은 한편의 드라마처럼 전개됐다.

경쟁 관계인 양국 정부, 두 아시아의 원로들이 깊이 얽혀들었고, 중국정부.중국은행.뉴스코프의 루퍼트 머독 회장 등이 조연으로 가세했다.

먼저 선전포고를 한 것은 싱텔. 싱텔은 2월초 ''아시아내 최대 인터넷 공급자로 도약하기 위해'' 홍콩텔레콤 인수를 추진하고 있다고 밝혔다. 곧이어 PCCW가 인수전 참가를 선언하면서 전쟁은 시작됐다.

발걸음은 PCCW가 더욱 빨랐다. 리쩌카이는 2월 중순 은밀히 베이징으로 날아갔다. 같은 시기 홍콩텔레콤의 장융린(張永霖) 총재도 베이징행 비행기에 올랐다.

이때 홍콩증시에서는 "초인(超人.李嘉誠의 별명) 이 장쩌민(江澤民) 주석에게 ''선처'' 를 부탁했으며, 江이 이를 받아들여 두 사람을 베이징으로 불렀다는 소문이 파다했다.

두 사람의 베이징 방문은 즉각 효과를 나타냈다. 중국은행이 돌연 "4개 은행이 힘을 합쳐 60억달러 규모의 신디케이트론을 PCCW에 제공하겠다" 고 발표했다.

시장에선 PCCW 주가가 가파른 상승곡선을 그렸고, 홍콩텔레콤의 그레이엄 월러스 회장도 "조건이 아주 좋아졌다" 고 흘렸다.

싱텔도 가만있지는 않았다. ''인수.합병의 귀재'' 로 알려진 루퍼트 머독으로부터 "인수자금 10억달러를 싱텔에 투자하겠다" 는 발표를 끌어냈다.

싱텔에 불리한 조언을 홍콩텔레콤측에 제공했다는 이유로 홍콩 최대은행인 HSBS측을 홍콩법원에 고소하기도 했다.

李전총리는 이 무렵 "홍콩 젊은이들의 창업정신.도전정신을 본받아야 한다" 고 강조하고 다녔다. 홍콩언론들의 적대감을 누그러뜨리고 아들을 독려하기 위한 발언으로 해석됐다.

그러나 이번 인수전의 핵심은 경제보다도 정치에 있었다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홍콩특구의 한 관계자는 "싱가포르 정부가 80%이상의 지분을 갖고 있는 정부기업이 1백29년 전통의 홍콩텔레콤을 가져가게 놔둘 수는 없다는 것이 중국정부와 홍콩특구정부의 생각이었다" 고 털어놓기도 했다.

◇ 홍콩텔레콤〓정식 명칭은 ''케이블 앤드 와이어리스 HKT'' 다. 영국 케이블 앤드 와이어리스가 모기업이다. 1백29년 역사를 갖고 있으며 영국 식민시대의 상징 같은 존재다.

중국과 홍콩정부가 홍콩텔레콤에 갖는 집착도 이런 역사적 배경과 무관치 않다.

식민의 상징을 벗어버리는 역할을 싱가포르에 맡길 수 없다는 판단이 PCCW의 인수로 가시화됐다는 분석이 그래서 나온다.

시장가치는 약 3천억홍콩달러(45조원) . 직원은 3천5백명선. PCCW와 합병된 새 회사 PCCW-HKT의 시장가치는 5천3백36억 홍콩달러 정도다. 일본 NTT를 제외하고는 아시아 통신시장 최대 규모의 기업이다.

홍콩텔레콤의 진짜 가치는 외형에 있지 않다. 사실상 홍콩통신시장을 지배하고 있다는 점이 중요하다.

''3백60만명의 전화가입자.1백40만의 이동통신 가입자.50만 인터넷회원'' 이 홍콩텔레콤의 ''실력'' 이다. 홍콩 통신시장의 80%에 이르는 규모다.

1백여년간 쌓인 통신 노하우는 물론, 인터넷.쌍방향 통신.위성서비스등첨단 통신분야에 대한 실력도 정상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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