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도전! 창업 스토리 ⑩ 한일월드 이영재 대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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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9면

서울 구로디지털단지에서 정수기 등 가전제품을 생산하는 한일월드 이영재(48·사진) 대표는 세일즈맨 출신이다. 고향인 강원도 삼척에서 대학 졸업 후 시멘트 회사를 다니던 그는 사업가의 꿈을 품고 1990년 서울로 올라왔다. 그가 처음 선택한 일은 영업. 무슨 사업을 하든 영업을 알아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는 헬스기구 영업부터 시작했다. 어떤 사람을 만나야 물건을 잘 팔 수 있을지 늘 고민했다. 어느 정도 자신이 붙자 정수기로 취급 품목을 늘렸다. 세일즈로 돈을 번 그는 94년 미국계 프랜차이즈 사업에 손을 댔다. 하지만 2년 만에 빈털터리가 됐다. 그는 본연의 세일즈 영업으로 재기하기로 마음먹고 96년 직원 12명으로 서울 삼전동에 ‘한일월드’란 상호로 중소 정수기업체의 유통대리점을 냈다.

 “헬스기구는 구매자가 시간이 좀 지나면 잘 활용하지 않더라고요. 그래서 누구나 매일 찾을 수밖에 없는 물에 승부를 걸었습니다.”

 당시 정수기 시장은 이미 웅진·청호가 유명세를 타고 시장을 선점해 나갈 때였다. 그는 직원들에게 “정수기의 생명은 필터인데 유명 회사 제품도 우리와 같은 필터를 쓴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영업 포인트로 삼도록 했다. 하지만 이것만으로 선두 업체를 따라잡기엔 역부족이었다.

 그는 1년여 고심하던 중 획기적인 아이디어를 생각해 낸다. 당시 할부 판매가 유행이었는데 고객들이 필터를 교체할 때마다 서비스 비용을 내는 데 부담을 느낀다는 점에 착안해 ‘임대식 할부’(렌털과 같은 개념)라는 판매 방식을 고안해 냈다. 물건을 3년이나 5년 단위로 할부 판매하되 그 기간에 필터 교체 비용 등 서비스 비용은 안 받기로 한 것이다.

 “가격 부담 없이 한국인의 소유욕을 만족시킬 수 있는 방식입니다. 매월 내는 할부금이 기존 할부보다 약간씩 더 들지만 전체적으로 보면 비용 부담이 줄어드는 구조여서 소비자의 호응을 받았죠.”

 새 판매 방식으로 주문이 쇄도했다. 서비스 비용 없이 할부 구매가 가능하다는 입소문이 나며 매출이 늘어나는 데 자신감을 얻은 그는 외환위기 직후인 99년 직원을 두 배 넘게 늘리고 사무실도 구로디지털단지로 확장 이전했다.

 렌털에서 애프터서비스는 기업의 성패가 갈릴 만큼 중요하다. 그는 “선발 업체들이 장악한 가정보다는 식당이나 관공서·학교를 중점적으로 공략했다”며 “이 시장에선 신속한 애프터서비스가 더욱 중요했다”고 말했다.

 이 대표는 2000년 경기도 부천에 1600㎡ 규모의 공장을 임대해 아예 자체 생산라인도 마련했다. 하지만 막상 물건을 만들려니 막막했다. 구조는 알아도 디자인을 어떻게 해야 할지 감이 오질 않았다. 그는 디자인 전공 대학생 2명을 아르바이트생으로 고용해 두 달 만에 디자인을 완성했다. 원 형태의 외장에 금도금을 입혀 고급스러운 이미지를 주는 디자인이었다. 처음으로 자체 브랜드 ‘필레오’를 달고 내보낸 제품은 뜻밖에 인기가 좋았다. 사각형 일색이던 기존 제품과는 차별화된 독특한 디자인이 소비자의 눈길을 끈 것.

 정수기사업이 순항하자 비데·공기청정기·이온수기 시장에 뛰어들면서 2009년에는 반월에 자체 공장과 물 연구소도 장만했다. 한일월드는 서울시가 제품력·기술력 등을 매년 평가해 우수 기업에만 쓰도록 허용하는 ‘하이 서울’ 브랜드를 7년째 사용하고 있다.

 이 회사는 최근 중국 닝보에 월 2만 대 규모의 정수기 생산공장을 완공했으며 올 초 콜롬비아에 정수기를 수출한 것을 계기로 해외사업을 본격화하고 있다. 이 대표는 “지난 2년간 전국에 22개 총판과 150여 개 대리점을 확보했다”며 “올해부터 공격적인 마케팅으로 국내외 시장을 넓혀갈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480억원의 매출을 올렸으며 올해 목표는 1000억원이다.

글=이봉석 기자, 사진=안성식 기자

이영재 대표 약력

1963년 강원도 삼척 출생
1987년 강원대 졸업
1996년 한일월드 창업
1999년 한일월드 법인 전환
2010년 ‘하이 서울’ 브랜드 대표자협의회장
2011년 서울디지털산업단지 경영자협의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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