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 번쩍이는 냉장고, 백화점 배꼽손 인사 … 부담스런 ‘과잉 디자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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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고마워 디자인
김신 지음, 디자인하우스
268쪽, 1만5000원

한 권의 책을 쓰는 지은이는 모두 디자이너다. 활자로 세상에 말을 걸면서 다양한 요소를 조율한다는 점에서 그렇다. 더 많은 사람과 소통하기 위해서 말이다. 디자인 전문가가 쓴 책 『고마워 디자인』을 읽다 보니 글 쓰는 것과 읽는 것까지 모두 디자인 행위로 보인다.

 지은이는 지난 16년 8개월 동안 월간 ‘디자인’ 편집자로 일해왔다. 다양한 분야의 디자이너를 만났고, 디자인을 보는 한국 사회의 인식이 어떻게 변해왔는지 가까이서 지켜봤다. 디자인 잡지에서 다루는 세계와 골목길과 시장에서 마주치는 삶의 현장 사이의 간극을 보며 혼란스러워하기도 했다. 이런 경험과 섬세한 통찰이 ‘디자인의 가치’를 화두로 삼은 이 책의 훌륭한 재료가 됐다.

 이를테면 표면을 그래픽으로 화려하게 장식한 가전제품에 비판을 가한 글 ‘오, 눈부신 가전제품이여’도 눈에 띄는 대목이다. 부피가 큰 가전제품은 집안에서 포인트가 아니라 조용하고 절제된 배경역할을 하는 것이 맞는데도, 표면에 장식을 덧입힐 필요가 있었느냐고 묻는다. 다양한 아이폰 케이스가 있듯이, 표면을 바꾸는 것은 소비자에게 맡겨뒀어야 한다는 지적이다. 장식을 입히는 게 디자인의 본질은 아니라는 것이다.

 ‘나는 백화점의 배꼽손 인사가 부담스럽다’에선 과잉 디자인으로 고급화하는 전략을 꼬집었다. 과잉 서비스가 있듯이 과잉 디자인도 넘쳐난다며, ‘불필요한’ 것을 덧붙이는 과잉 디자인을 고급화라고 착각해서도 안 된다고 권고한다.

 지은이는 또 “디자인을 해야 하는 순간에 예술을 하는 착오, 상품화되는 것보다 전시장에 걸리는 것을 더 자랑스러워하는 태도, 예술이 디자인보다 더 재미있을 거라는 착각”을 경계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대량 복제돼야 하고, ‘팔리거나 소통돼야’하는 디자인의 가치를 다시 돌아보라는 제언이다.

 이 책에는 떠벌리는 듯한 대단한 에피소드도, 화려한 수사도 없다. 디자인 역사와 뒷 이야기, 비평이 자연스레 녹아 있어 술술 읽힌다. 절제돼 있지만 친근하고, 실용적으로 디자인된 책이다.

이은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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