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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조일원화, 여성 차별 우려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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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이영란
숙명여대 법대 교수

법조 경험이 없는 판·검사의 무리한 재판이나 수사, 사법기관의 폐쇄적 엘리트주의와 관료주의 등이 문제로 지적되곤 한다. 사법개혁의 하나로 법조일원화가 추진되고 있는 이유다. 법조일원화란 판사·검사·변호사 간의 벽을 허물고 필요한 인력을 선출하는 제도를 말한다.

 과거 한국의 법조에는 재조법조(在朝法曹)와 재야법조(在野法曹)라는 대립적 관념이 존재했다. 재조는 공무원 신분을 가진 판·검사이고 재야는 권력에 대항하고 권력을 비판하는 법조세력을 지칭했다. 이러한 풍토에서는 법조일원화는 감히 꿈꿀 수도 없었으며, 관료 판사·무소신 판사·정치 판사를 양산했었다. 다행히 세상이 좋아져 법조일원화라고 하는 제도를 도입하려고 하는 것인데 일원화라는 말은 법관·검사의 임명 시 재조와 재야 법조계를 ‘일원화’한다는 뜻이다. 법조일원화가 되면 풍부한 경력을 가진 변호사들이 판·검사에 임용됨으로써 다양하고 전문화된 사회적 요구가 사법과정에 반영될 뿐 아니라 사법기관의 자의적 권력행사에 대한 시민사회의 간접적 통제도 가능하게 된다.

 기왕에 이런 좋은 제도를 도입하려고 했으면 국회사법개혁특별위원회에서 처음에 논의되던 대로 일정 기간 준비과정을 거쳐 2017년부터는 10년 이상 법조 경력이 있는 사람 중에서만 판사를 선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현실적 어려움 등을 이유로 2013년부터 2017년까지는 법조 경력 3년 이상, 2018년과 2019년에는 5년 이상, 2020년과 2021년에는 7년 이상, 그리고 2022년부터 비로소 10년 이상의 사람 중에서 판사를 선발하겠다는 법원 측의 주장은 잔머리 굴리는 것으로밖에 볼 수 없다. 왜냐하면 현재도 사법연수원을 수료한 후 법조 경력으로 인정되는 3년의 군복무 기간을 마친 법조인들을 바로 판사로 선발하고 있기 때문이다. 당분간은 애초 의도한 법조일원화 취지를 전혀 살릴 수 없는 결과가 불가피하다.

 잔머리라고밖에 할 수 없는 또 다른 이유는 이런 판사 선발 방식이 도입되면 3년의 군복무를 마친 남성을 우선해 판사로 뽑을 수밖에 없는데, 이는 신규 법조인의 절반가량을 차지하고 있는 여성들의 판사 선발 가능성을 더욱 줄어들게 할 것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최근 논의 중인 ‘로클럭 제도’는 로스쿨을 마친 사람 중 200여 명을 로클럭으로 선발해 최대 3년의 교육을 시킨 후 그중에서 판사를 선발하겠다는 것이다. 그런데 앞으로는 변호사시험 성적을 공개하지 않게 되어 있기 때문에 법원이 로클럭이나 로클럭 출신 판사를 남성 위주로 선발해 여성 판사를 더욱 줄여 나가려는 의도를 가진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을 지울 수 없다.

 현재의 법조일원화, 로클럭제 도입 논의는 사법에 대한 국민의 신뢰회복이라는 본래의 취지를 벗어난 채 오히려 여성 법조인을 부당하게 차별할 수 있는 형태로 변질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법조일원화 등 도입 논의가 지금이라도 학식과 경륜, 덕망을 두루 갖춘 판사로부터 재판을 받고자 하는 국민의 여망을 반영하고, 여성 법조인의 공무담임권도 부당하게 침해할 우려가 없는 형태로 본질에 충실하게 마무리될 수 있기를 바란다.

이영란 숙명여대 법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