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시론

법인화가 대학의 질적 경쟁력 높인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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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김동익
언론인·전 용인송담대 총장

대한준설공사라는 공기업이 있었다. 강바닥의 모래를 긁어 올리는 준설선에는 평균 8명의 선원이 있었다. 이 회사가 민영화되면서 준설선의 선원은 3명이 되었으나, 일의 능률은 오히려 올라갔다. 일본에는 국립대학이 86개 있다. 국립대학 교수는 국가공무원 신분이었고, 근무도 공무원 근무규정에 따라 9시 출근, 5시 퇴근이었다. 실제로 그럴 필요가 없었으나 서류상으로는 그렇게 만들어 놓았다. 대학에서 필요한 것은 학생을 어떻게 교육하느냐와 연구실적을 어떻게 높이느냐이고, 이를 위해 대학 간 경쟁은 자연히 생기는 것이다. 그런데 경쟁은 둘째로 밀어두고 신분과 근무 규정 따위가 중요했던 곳이 국립대학이었으니 그 개혁은 필연이었다. 일본은 2001년 국립대학의 법인화 작업을 시작해 2004년 4월, 이를 완료했다.

 대학이 공기업처럼 경쟁력이 없다고 해서 민영화 전환을 전적으로 하기도 어려워 정부기구와 민간기업의 중간성격을 지니는 제3섹터(sector)가 바로 대학법인이다. 대학의 법인화가 대학의 기업화라는 얘기는 잘못된 것이다. 대학은 이익을 남기는 곳이 아니기 때문에 기업화가 될 수 없다. 법인화되면 기초학문이 더욱 퇴락할 것이라는 걱정도 있다. 그러나 대학인들이 기초학문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있는 한 법인화는 기초학문의 성쇠와 아무 상관이 없다.

 대학법인화는 대학운영의 경직성을 풀어가는 유일한 길이다. 법인이사나 경영협의회, 총장선발위원회에 외부 인사가 참가하고, 전문가와 민간인이 참여하는 대학평가기구가 대학의 교육과 교수의 연구 실적을 평가해 그 결과를 대학의 자원 배분에 반영함으로써 대학운영의 폐쇄성·경직성을 풀어나가야 한다.

 우리나라의 국립대학은 45개(교육대학 11개, 전문대학 3개 포함), 학생수는 약 70만 명(전체 대학생의 약 28%)이며 교수는 약 2만 명이다. 국립대학들이 교육의 질을 높이고 연구실적을 올리기 위해 여러 가지로 노력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 성과에는 한계가 있다. 대학운영의 방만성이 체질화되어 있기 때문이다.

 한 국립대학으로 그 방만성을 설명할 수 있다. 이 대학의 학생 정원은 1680명, 재학생은 약 800명, 교수 118명, 직원55명, 조교 23명이다. 이 대학 교수의 연구실적도 내세울 만한 것이 없다. 졸업생이 사회에서 우대받는 특화된 학과가 있는 것도 아니다. 이런 대학이 무풍지대에서 흘러가고 있는 곳이 대한민국이다.

 말레이시아와 태국은 일본보다 한 발 앞서 대학개혁에 착수했다. 말레이시아는 이미 1998년에 국립대학이 법인화됐다. 태국도 99년에 모든 국공립대학을 자율경영대학(Autonomous University)으로 전환하는 입법을 했다. 이 전환이 단시간 안에 이루어지지 못한 것은 많은 교수가 신분의 불안으로 대학개혁에 저항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학의 질적 향상을 위해 대학개혁이 필요하다는 논리를 이길 수 있는 저항의 명분은 없다.

 스위스 국제경영개발원(IMD)의 2008년 세계 경쟁력연차보고서에 따르면 한국 대학 교육의 질적 수준은 평가대상국 55개국 중 53위다. 이 처참한 상황에 대해 우리 대학인은 그 심각성을 얼마나 인식하고 있을까. 세계는 대한민국의 경제력뿐 아니라 예술·체육·연예 등 각 분야의 성장에 주목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대학이 그 주목의 대열에 설 날은 언제쯤일까.

 입학정원의 70%도 못 채우는 대학은 수십 개다. 입학 자원의 감소로 많은 대학이 존립의 위협에 직면하고 있다. 사립대학은 이 위협을 극복하기 위해 필사의 노력을 하고 있는데, 국립대학은 여건 변화에 대응할 체제를 갖추고 있는가. 경쟁력을 높이고, 위기에 대처할 체제정비를 국립대학이라고 외면할 수는 없다. 국립대학의 법인화는 바로 이 점에서 절실한 과제인 것이다.

김동익 언론인·전 용인송담대 총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