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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퀴를 잡고 또 잡아 본들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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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남윤호
경제선임기자

조선시대 청백리를 가장 많이 배출한 관청은 어디였을까. 지금의 기획재정부에 해당하는 호조(戶曹)였다고 한다. 그 다음이 공조(工曹)였다. 지금의 국토해양부다. 요즘 불거진 국토부의 부패상을 보면 다소 의외다. 이권과 권한이 많기론 예나 오늘이나 마찬가지일 텐데. 결국 의지를 갖고 하기 나름 아닌가 싶다.

 부정부패 방지와 척결은 역대 대통령들이 취임사에서 늘 강조하던 내용이다. 그중에서도 김영삼 전 대통령이 유별났다. 취임사에서 부정부패라는 말을 네 번이나 썼다. 역대 대통령 중 빈도가 가장 많다. 반면 이명박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이를 언급하지 않았다. 물론 안 했다고 부패정권이 되는 것도, 했다고 청렴한 정권이 되는 것도 아니다.

 김영삼 정부는 역대 어느 정부보다 강력한 사정활동을 했다. 결과는 어땠나. 표적사정과 측근비리 탓에 실패했다는 평가가 우세하다. 또 공직 사회의 무사안일과 보신주의를 부르기도 했다. 부패 비용은 급등했다. 민원인은 같은 편의를 얻어내기 위해 전보다 더 많은 뇌물을 줘야 했다. 실패한 마약단속이 마약을 뿌리뽑지 못한 채 값만 올려놓는 것처럼. 김대중·노무현 정부도 비슷한 패턴이었다. 처음엔 강력한 부패방지 대책을 내놨지만 결과적으론 큰 성과를 못 냈다. 이대로라면 다음 정부 역시 같은 길을 갈 듯하다.

 도대체 뭐가 잘못된 걸까. 부정부패를 척결하려는 노력에도 불구하고 부패가 끊이질 않는다. 부패의 무한증식 구조가 자리잡은 건 아닌지 의구심이 들 정도다.

 그렇다고 우리 공무원들에게 특별히 ‘부패DNA’가 있다고 볼 수는 없다. 그들도 좋은 교육 받고, 어려운 시험 붙어 공직자가 됐다. 한몫 쓱싹하려고 공무원이 된 건 아닐 게다. 또 지금 이 시간에도 수많은 젊은이가 공무원 시험 공부를 하고 있다. 그들 역시 부패 예비군이란 말인가. 결코 그렇지 않다.

 오히려 시스템에 문제가 있다고 봐야 한다. 그렇다면 개별적인 비리적발엔 한계가 있다. 눈에 보이는 바퀴를 잡고 또 잡아도 바퀴를 없애긴 어렵다. 바퀴가 서식하는 음습한 환경을 없애지 않으면 말이다.

 주변을 돌아보자. 공무원들이 부패의 유혹에 노출되는 환경이 적잖다. ‘우리가 남이가’로 상징되는 연고주의, 좋은 게 좋은 거라는 식의 온정주의, 상명하복보다 무서운 갑을(甲乙) 관계, 관주도 경제와 관치금융, 과도한 규제와 재량권…. 이런 게 복합적으로 작용해 공직사회에 부패친화적 환경이 조성된 것이다. 이는 우리 모두의 부끄러운 자화상이다.

 이런 환경에서 부패는 유기체처럼 진화한다. 사정(司正)이라는 ‘백신’이 투여되면 일시 위축되지만 곧 적응해 활동을 재개한다. 내성은 더 커진다. 물론 지금은 분노한 나머지 모두들 부패를 때려잡자는 쪽으로 내달리고 있다. 하지만 원칙 없고 저돌적인 사정활동으론 부패를 통제하기 어렵다. 계속 늘고 있는 공직자 비리 사건이 이를 잘 보여준다.

 또 암행감찰도 좋지만, 모든 공무원을 우범자 취급하는 건 보기에도 딱하다. 공무원 사회엔 ‘공초(公草)’라는 말이 있다. 민초에 공무원의 ‘공’자를 갖다 넣은 것이다. 쓸데없는 욕심 부리지 않고 맡은 일을 묵묵히 하는 실무 공무원들을 가리킨다. 이들을 적으로 돌리면 어찌 될까. 순식간에 풀잎처럼 눕는다. 그리고 바람이 바뀔 때를 기다린다. 그동안엔 시키는 일 중심으로 규정에만 매달려 처리한다. 복지부동과 무사안일이다. 노조가 준법투쟁하듯 공무원도 준법행정으로 맞선다. 이래서야 행정 서비스의 질을 보장할 수 없다. 정부 역량도 크게 떨어진다.

 모든 문제를 한번에 해결하려다간 실패하기 마련이다. 부패친화적 환경을 제거하는 데엔 정부뿐 아니라 사회 구성원 모두의 노력이 필요하다. 그것도 오래도록. 이를 이해하고 차분히, 그러나 착실하게 대응하는 것이 올바른 첫걸음이다.

남윤호 경제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