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촌 건강] “심장병 가족력, 미리 약 먹어 예방 가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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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구리와 도롱뇽, 열대어 일종인 제브라피시는 심장이 손상되더라도 다시 재생된다. 그런데 사람도 미리 약을 먹으면 심장근육이 재생될 수 있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영국 유니버시티 칼리지 런던(UCL) 폴 릴리 박사팀은 실험용 쥐에 ‘티모신 베타-4(Tβ4)’라고 불리는 단백질을 주입했더니, 심장에 손상을 입혀도 심장근육이 다시 생겼다고 밝혔다.

 사람이나 쥐 같은 포유류는 다른 종에 비해 심장혈관을 만드는 능력이 제한돼 있다. 때문에 심장근육이 한 번 손상을 입으면 회복이 어렵다. 바이오 분야 인공심장 전문가인 고려대 의대 의공학과 박용두 교수도 “인공적으로 심장을 둘러싼 혈관과 신경까지 모두 재현하는 것은 아직까지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 결과대로라면 ‘Tβ4 단백질 섭취=심장근육 재생’이라는 공식이 성립될 가능성이 있다. 심장병 가족력이 있거나 심장 발작 위험이 큰 사람이 이 단백질이 포함된 약을 먹어두면 심장 재생이 가능해져 심장에 문제가 생기더라도 심장 손상을 최소화할 수 있는 것이다.

 연구진은 실험용 쥐에게 Tβ4 단백질을 일주일간 주입했다. 이후 쥐를 마취시키고 심장마비가 왔을 때와 비슷한 환경을 만들었다. 동맥을 잠시 막아버린 것. 실험용 쥐는 죽지 않았지만 심장 기능이 확 떨어졌다.

 심장마비가 오면 손상된 심장근육은 다시 자라지 않고 죽은 조직으로 변한다. 이 조직은 심장의 수축활동을 방해해 심장을 정상적으로 박동시킬 수 없게 만든다.

 하지만 실험용 쥐의 심장은 손상이 생긴 후 2일이 지나자 변하기 시작했다. 심장 표면에 있던 줄기세포가 활동한 것이다. 2주일이 지나자 줄기세포가 심장 외부에서 손상 부위 쪽으로 이동했다. 원래 심장에 있는 줄기세포는 어렸을 때 심장근육을 만드는 역할을 하지만 성장이 멈추고 나면 심장 외부에 위치하며 활동을 멈춘다.

 이후 죽은 조직의 형태와 크기가 원래 상태로 돌아갔다. 심장박동 능력도 25%나 증가했고, 심장 두께는 시간이 지날수록 더 두꺼워졌다. 연구진은 Tβ4 단백질이 심장 표면에서 잠자고 있던 줄기세포를 다시 활동하도록 ‘방아쇠’ 역할을 한 것 같다고 추정했다.

 릴리 박사는 “어떤 방식으로 심장 표면에 있는 줄기세포에 신호를 보내는지 규명하는 일이 남았다”며 “쥐를 대상으로 한 초기 연구지만 손상된 심장이 스스로 회복하는 약물을 개발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연구결과는 학술지 네이처 최신호에 게재됐다.

권병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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