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솟는 미 물가 … 달러 풀어 경제살리기 빨간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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엎친 데 덮친 격이다. 미국 경기지표에 빨간 불이 켜진 데다 잠잠하던 물가가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미국 노동부는 15일(현지시간) 에너지·식품류를 뺀 ‘근원(core)’ 소비자물가(CPI)가 지난달 0.3% 올랐다고 밝혔다. 이는 전문가 예상치 0.2%를 웃돈 것으로 2008년 7월 이후 3년 만에 가장 높은 상승률이다. 특히 동일본 대지진으로 부품 조달에 애로를 겪은 자동차와 의류 가격이 가파르게 올랐다. 지난달까지 CPI도 3.6% 올라 2008년 10월 이후 가장 높았다고 로이터통신이 전했다.

 근원 CPI는 미 연방준비제도(Fed)의 통화정책 결정 때 가장 유의하는 지표 중 하나다. 에너지와 식품 가격은 시장 수급이나 기후에 따라 등락이 심하기 때문에 이를 빼고 물가를 가늠하기 위해서다. 그동안엔 초저금리 정책과 두 차례 양적 완화 정책에도 불구하고 근원 CPI가 안정돼 있었다. Fed가 경기부양을 위해 공격적으로 금융완화정책을 펼 수 있었던 것도 그 덕분이었다. 그런데 잠잠하던 물가가 달아오르기 시작한 것이다.

 다만 지난달 소비자물가 오름세가 얼마나 지속성을 띨 것인지는 아직 불투명하다. 동일본 대지진의 여파가 물가 상승을 부채질한 주된 원인이었기 때문이다. 근원 CPI와 달리 에너지 가격은 오히려 떨어졌다. 에너지와 식품까지 합한 전체 CPI는 지난달 0.2% 오르는 데 그쳐 전달(0.4%)의 절반 수준으로 떨어졌다. 에너지가격 하락은 시차를 두고 다른 물가를 끌어내리는 효과도 있다.

 그렇지만 Fed의 통화정책은 선택의 폭이 좁아졌다. 최근 경기지표가 잇따라 어둡게 나오자 Fed 주변에선 3차 양적 완화 정책 가능성까지 거론됐다. 그러나 물가가 고개를 들기 시작하는 바람에 Fed의 선택지는 줄 수밖에 없게 됐다. 물가가 들썩거리는 마당에 돈을 더 풀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오히려 지난해 11월 시작한 2차 양적 완화 정책의 실효성에 대한 논란만 커질 것으로 보인다. 경기 부양 효과도 내지 못했으면서 물가만 자극했다는 얘기다.

 Fed는 그동안 미뤄온 인플레 목표치 설정도 검토하고 있다. 내부적으로만 설정해온 Fed의 인플레 관리 목표를 아예 공개해 Fed의 물가 관리 의지를 보여주자는 취지다. 다만 Fed 내부에선 인플레 목표치가 자칫 Fed의 발목을 잡는 자충수가 될 수 있다는 우려도 있어 실제 도입까지는 진통이 예상된다.

뉴욕=정경민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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