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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 의료체계, 환골탈태해야 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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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조재국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선임연구위원

군대에서 제대로 치료받지 못해 사망한 사건이 최근 잇따라 드러나자 군에 대한 비판이 거세지고 있다. 군 의무체계의 가장 큰 문제점은 임상 경험이 풍부한 군의관이 턱없이 부족하다는 점이다. 대우가 형편없어 군의관들이 의무복무 기간을 채운 뒤 군에 남으려 하지 않기 때문이다. 장기 복무를 신청하는 군의관이 30%에 지나지 않는다. 군의관 급여는 비슷한 경력을 가진 국·공립 병원 전문의사의 80% 정도에 불과하다. 따라서 장기 군의관의 처우를 개선하는 게 가장 시급한 일이다. ‘군의관 임용 등에 관한 특별법’이라도 만들어 임상경험이 풍부한 민간 의사를 끌어들이는 방법도 있다. 일각에서는 군의관을 전문적으로 양성하는 국방의학원을 설립하자고 제안하는데 이는 방향을 잘못 잡은 것이다. 매년 3300여 명의 의사가 배출되는 상황에서 수천억원의 예산을 들여 국방의학원을 설립해야 할까. 이를 만들어도 군의관 배출까지는 10년 이상 걸릴 것이기 때문이다.

 응급의료체계 개선도 시급하다. 군에서는 언제 어디서 대형사고가 날지 모른다. 이런 일이 벌어졌을 때 얼마나 적절하고 신속하게 대응하느냐에 따라 수많은 목숨이 왔다 갔다 한다. 응급체계를 개선하려면 전방에서의 초기 응급처치 인력을 확보하고 최신 앰뷸런스 및 헬기 등의 후송 수단과 통신장비를 보강해야 한다.

 의료전달체계 개편도 같이 가야 한다. 1차 진료 중심 체계를 짜는 게 핵심이다. 각급 의무대의 시설·장비·진료보조인력을 강화하고 진료 기준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 그런 후 군단(2차)-수도병원(3차)으로 이어지게 체계를 단순화해야 한다. 후방의 군 병원은 규모를 과감히 축소하고 인력과 장비를 여건이 열악한 전방 병원으로 집중해야 한다. 대신 후방의 민간병원을 적극 활용하면 된다. 이런 점에서 이스라엘은 좋은 사례가 된다.

 한국의 의료는 민간 중심으로 돌아간다. 군 의료도 민간부문 병원(국·공립 병원)과 협력체계를 강화해야 한다. 최근 육군훈련소에서 문제가 되고 있는 뇌수막염 등의 전염병 예방과 치료, 응급의료 제공, 정신질환 치료는 물론 많은 부분에서 민간 부문 병원의 협조를 얻어야 한다. 현재 한 해 4만여 명의 현역 군인이 민간 병원으로 나가 건강보험으로 치료를 받고 있다. 군 병원에서 해결이 안 되거나 부모가 군 의료를 불신해서다. 이들의 진료비를 감면해 줄 필요가 있다.

 군내 다른 병과(특히 전투병과)가 군의관을 무시하는 풍조는 반드시 개선돼야 한다. 민간인이든 군인이든 생명을 구하는 사람은 의사며 우수한 군의관과 의무체계가 있기에 전쟁에서 열심히 싸울 수 있는 것이다. 군의관을 ‘핀셋 장교’라고 비하하면서 처우개선을 반대한다면 군의관들이 제 실력을 발휘하기 힘들다. 요즘 병사들은 독자(獨子)인 경우가 많다. 애지중지 키운 소중한 아들들이다. 이런 상황을 감안하면 군의관과 의료지원 인력에 왜 투자해야 하는지가 자명해진다.

 2006년 한 병사가 제대 직후 위암으로 사망한 사건을 계기로 민간 전문가들도 참여해 대책을 만들었다. 이를 노무현 대통령에게 보고하고 일부가 시행됐다. 사상 처음으로 국군의무사령관을 중장으로 진급시킨 게 그것이다. 그러나 해를 넘기면서 유야무야됐다.

 제발 정권마다 이와 같은 일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하자. 살릴 수 있는 젊은 군인들의 생명은 살려 보자. 의료사고로 군에서 자식을 잃은 부모들이 우리 군을 원망하도록 만들어서는 안 된다. 오히려 군대에 다녀오면 질병이 낫고 몸과 마음이 건강해진다는 것을 보여줘야 한다. 이번에는 우리 부모들이 정말로 안심할 수 있도록 군 의무체계의 환골탈태를 기대한다.

조재국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선임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