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북을 열며] 중국 돼지와 식량안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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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한우덕
중국연구소 부장대우

중국 허난(河南)성의 왕원(王文·40) 선생은 돼지 약 500마리를 기르는 양돈 농민이다. 그는 요즘 허리가 휠 지경이란다. 사료 값 때문이다. 그는 현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6개월 기른 돼지를 시장에 팔면 1480위안(약 25만9000원) 정도 받는다”며 “사료·약품 등의 경비를 제외하면 순소득은 100위안도 안 된다”고 푸념했다. ‘돼지고기 값이 더 올라야 한다’는 얘기다. 중국 농촌에 퍼져 있는 이들 양돈 농민 이 키우는 돼지는 현재 약 4억5000만 마리. 세계 전체의 절반을 넘는다.

 돼지는 곡물 먹는 ‘기계’다. 돼지 몸 1㎏을 불리기 위해서는 약 3㎏의 곡물을 먹여야 한다. 특히 대형 기업영농이 늘면서 중국에서도 사료 먹는 돼지 비율이 높아지고 있다. 사료 수요가 매년 20% 넘게 급증하면서 가격도 뛰고 있다. 돼지고기 값이 오를 수밖에 없다. 중국 상무부 집계 도매가격은 ㎏당 20위안(약 3700원)으로 1년 전보다 약 40% 급등했다. 이는 중국 물가지수에 고스란히 반영된다. ‘돼지가 중국, 나아가 세계 인플레의 주범’이라는 말이 그래서 나온다. ‘왕 선생’의 움직임에 세계가 긴장하는 이유다.

 중국에서 돼지고기는 전통적으로 식량과 함께 천하를 편안케 하는 음식(猪粮安天下)이었다. 지금도 특별관리 품목이다. 중국의 하루 돼지고기 소비량은 약 14만t. 다 자란 돼지 약 70만 마리에 달하는 어마어마한 규모지만 이 정도는 안정적으로 공급해야 한다는 게 정부 생각이다. 중국이 사료용 옥수수 수입에 적극 나서는 이유다. 지난해 중국의 옥수수 수입량은 157만t으로 전년보다 무려 18배 늘었다. 국제 곡물시장에 충격이 아닐 수 없다. 지난 1년 동안 시카고상품거래소의 옥수수 값이 약 100% 오른 데는 중국 요인이 컸다.

 옥수수뿐만이 아니다. 중국은 대두·밀·보리 등 다른 국제 곡물시장에도 얼굴을 내밀고 있다. 2008년까지만 해도 제로(0) 수준이었던 밀 수입량은 작년 120만t으로 늘었다. 올해는 300만t에 이를 전망이다. 작년에 중국이 국제 시장에서 사간 대두(콩)는 5480만t으로 세계 전체의 60%에 달했다. 쌀도 불안하다. 식량자급 구조가 깨지고 있는 것이다.

 구조적인 문제다. 중국 인구는 세계 전체의 약 20%를 차지하지만 경작지 면적 비율은 6%에 불과하다. 소득이 증가하면서 이 불균형 문제가 표출되고 있는 것이다. 게다가 매년 거르지 않고 나타나는 기상 이변은 농업 생산에 타격을 주고 있다. 올 초에는 밀 산지인 북부지방이 가뭄에 시달려야 했다. 지금은 양쯔(揚子)강 중하류의 가뭄이 쌀 경작을 위협하고 있다.

 문제는 우리다. 우리나라의 곡물 자급률은 27%에 불과하다. 밀·옥수수·대두 등 주요 작물은 10% 남짓이다. 급증하는 중국의 곡물 수입은 우리의 식량 확보에 부담이다. 허난성의 양돈 농민 ‘왕 선생’이 우리 식탁을 위협하는 꼴이다. 식량안보의 끈을 더 죄어야 할 이유다.

한우덕 중국연구소 부장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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