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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또’로 가는 ‘물수능’은 안 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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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조효완
은광여고 교사
전국진학지도협의회 회장

지난 2일 치러진 한국교육과정평가원 수능 모의평가를 놓고 학생·학부모·교사들의 술렁거림이 심상찮다. 지난해 모의고사나 수능에 비해 아주 쉽게 출제된 난이도 때문이다. 이주호 교육과학기술부 장관은 수험생들의 시험 부담을 줄이고, 사교육비를 경감시키기 위해 2012학년도 수능을 만점자가 1% 이상 나올 수 있도록 쉽게 출제하겠다고 공언한 바 있다. 그런데 이번 모의평가 결과 만점자가 1%를 넘어 영역에 따라 2~3%까지 넘어설 것으로 예상된다. ‘물수능’ 사태가 우려되는 대목이다.

 수능을 준비하고, 응시해야 하는 수험생과 그 시험을 준비시키는 학부모와 현장 교사들은 시험이 어렵고 쉬움에 따라 학습 방법이 달라지고, 결과도 달라지며, 그에 따라 입시의 성패가 결정된다. 그런 점에서 이번 모의평가는 문제가 있다.

 첫째, 진학지도에 어려움을 겪는다. 시험문제가 쉬우면 수험생들은 시험을 잘 봤다고 생각하고 상향 지원하는 경향이 강하다. 중위권이나 하위권 학생들까지 조금만 더하면 훨씬 더 좋은 점수를 받을 수 있다고 하면서 재수를 쉽게 결심하고 상향 지원을 선택한다. 이렇게 되면 안정 중심으로 지원시키는 학교 진학 상담은 곤경에 처할 수밖에 없다. 학교 상담이 어려워지면 학생들이나 학부모들은 자연스럽게 사설기관을 찾을 것이다. 갑작스럽게 쉬워진 수능으로 공교육의 진학지도 노하우가 흔들리게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둘째, 쉬운 수능은 점수의 인플레이션뿐만 아니라 실력보다는 실수에 기인해 대학 진학이 어려워질 수 있다. 수험생들이 실수 때문에 대학 진학이 어려워졌다고 생각하고 재수할 가능성이 크다. 실제로 수능이 쉬운 해는 재수생이 늘어난다. 수능이 쉬워지면 수시에서 한 문제 실수로 최저학력기준에 미치지 못해 불합격하는 사례도 많이 생겨날 수밖에 없다.

 셋째, 학교 교육에 악영향을 끼칠 수 있다. 이번 모의평가의 특징은 2011학년도에 비해 교육방송(EBS)과의 연계성이 높았다. EBS 교재만 제대로 학습한다면 성적 향상을 기할 수 있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학교에서 교과서를 통한 학습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을 가능성이 많다. EBS와의 연계성이 아니라 일치된 문제가 많았기 때문이다.

 정부가 유일하게 문제집을 공식적으로 검인한 것은 EBS 교재밖에 없다. 정부기관에서조차 문제집에 나와 있는 문제를 그대로 출제한다는 것은 학교에서도 이제는 교과서 대신 EBS 문제집으로 수업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더 심각한 문제는 학교에서 중간고사나 기말고사도 이 문제집에 있는 문제 그대로 출제해도 된다는 것이다. 이렇게 된다면 문제는 심각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현 정부에서 내세우고 있는 교육 중점사항 중 하나가 창의성 교육인데 과연 학교에서 창의성 교육이 제대로 실천될 수 있을지 염려하지 않을 수 없다. 비단 창의성뿐이겠는가. 심하면 EBS 문제만 그대로 외우면 된다는 생각까지 할 수 있을 것이다. 문제의 일치성보다는 연계성으로 학생들의 창의력·사고력을 증진시키고 문제해결 능력을 키울 수 있는 방향으로 출제한다면 학교 교육도 탄력을 받고 학생들 지도에 큰 성과를 거두리라고 본다.

 물론 점수로 대학 가는 시대는 지났다. 다양화·전문화·특성화된 내실 있는 교육으로 대학 선발의 기준이 바뀌어야 한다는 것은 사실이다. 문제가 쉬우면 변별력이 없다는 말을 한다. 단 1점 안에 수천 명이 모여 있다. 그렇다 하더라도 점수 외의 평가요소로 학생들을 얼마든지 선발할 수 있다. 그러나 6월과 9월의 모의평가, 그리고 수능은 정부기관에서 주관하는 것이기에 학교현장에 이 시험의 영향력이 얼마나 큰가를 고려해야만 한다. 단지 선발 목적만 있는 것은 아니다. 수능은 학교 교육, 학생들의 학습 방향과 자세에까지 영향을 미친다.

조효완 은광여고 교사·전국진학지도협의회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