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주는 중소기업 주간] "대기업 경영 악화 중기가 떠안아서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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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반월공단에서 중소기업을 운영하고 있는 김모(50)씨. 3000원짜리 기계 부품을 한 개를 만들어 대기업에 납품하면 400원을 손해본다. 2년전만 해도 같은 물건을 팔아 600원 이상을 남겼다."재료가 되는 철강재 가격이 2배 이상 올랐는데도 납품 가격에 반영해 주지 않고 있습니다. 제품을 만드는 데 드는 원가 중 재료비의 비중이 2003년 50%에서 올해 70%로 높아지고 그만큼 이익이 손실로 바뀌었습니다."

"납품 단가를 올려달라고 하면 생산기지 해외 이전을 검토 중이라고 말합니다. 손해를 보면서라도 제품을 만들어 팔지 않으면 안되는 상황에서 연구개발을 할 여력이 있겠습니까".이 곳에서 부품 을 만드는 또 다른 중소기업 사장 박모(48)씨의 푸념이다.

경기순환.고유가.임금인상 등으로 인한 대기업의 경영 충격을 중소기업이 떠안는 기능을 하고 있다는 지적이 중소기업계에서 본격 제기되고 있다.불공정한 납품 관계를 통해 대기업들이 제조원가 상승 부담을 중소기업에 전가하고 있다는 것이다.

중소기업협동조합중앙회는 최근 '대.중소기업간 양극화 실태와 문제점'이라는 보고서에서 지난 10년동안 자동차 5개사의 영업 지표를 살펴 보면 이익 증가의 주된 요인이 외환위기 이전에는 판매대수 증가였으나 외환위기 이후에는 납품단가 삭감을 통한 이익 창출로 바뀌었다고 지적했다. 이 같은 구조는 특히 2차,3차 협력업체로 갈수록 심해지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중앙회는 덧붙였다.

중앙회 관계자는 "대기업 노사가 임금협상에서 5%를 인상하기로 하면 1차 협력업체는 납품가를 10% 내려야 하고,2차 협력업체는 15%를 인하하는 구조"라고 설명했다.실제로 중소기업청이 파악한 납품단가 인하 폭은 2001년 2.6%에서 2002년 3.9%,2003년 6.6%로 해마다 커지고 있다.

중소기업연구원 송장준 박사는 "대기업의 제조원가 상승 부담을 중소기업이 떠안고 있다"며 "이 때문에 수출 증가에 따른 대기업의 수익 증가가 중소기업으로 확산하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대기업과 중소기업간의 양극화 현상도 갈수록 심화되는 추세다.최근 산업은행이 발표한 '2004년 기업재무분석'에 따르면 국내 제조업의 매출액 대비 영업이익률은 대기업이 평균 9.5%인데 비해 중소기업은 4.3%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공정거래위원회가 최근 발표한 중소기업의 임금 수준은 대기업 평균 임금의 65.8%(2003년 기준)로 98년에 76.2%보다 10%포인트 이상 줄었다. 또 중소기업의 복리후생비는 대기업의 평균 57% 수준에 그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중소제조업체 운영자들은 "절대 자식한테 물려주지 않겠다"고 입을 모은다.한 중소제조업체 대표는 "언제 공장을 그만둘지 기회만 엿보고 있다"며 "요즘엔 젊은이들도 제조업 창업보다 차라리 음식점에서 쟁반 나르는 쪽을 택하는 것이 현실"이라고 전했다.

정부가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상생 경영을 부르짖고 나선 것도 이같은 문제 인식 때문으로 보인다. 정부는 16일 노무현 대통령 주재로 청와대에서 4대 그룹 등 대기업 회장단 및 경제단체장들이 참석한 가운데 대.중소기업간 협력 방안을 주제로 토론회를 갖는다. 성과공유제, 현금결제 확산 등 대기업들의 중소기업 경쟁력 강화 방안도 잇따라 발표되고 있다.

하지만 이를 바라보는 중소기업 현장의 눈길은 여전히 믿음이 가지 않는다는 분위기다.

한 중소기업 대표는 "어음 대신 현금결제를 한다면서 어음 돌리는 기간 만큼의 이자를 결제금액에서 빼고 준다.하루 아침에 거래선을 바꾸는 일도 비일비재 하다 "며 "중소기업을 진정한 동반자로 여기는 인식이 먼저 만들어져야 한다"고 말했다.

중소기업청 관계자는 "국내 중소기업의 수는 295만개에 이르고 있으며 사업자수로는 전체의 99.8%를 차지하고 있지만 매우 취약한 상태"라며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협력해 함께 발전할 수 있는 윈윈모델을 많이 만들어 확산하는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박혜민.김필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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