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야 … " 어깨 편 정동영 장관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04면

정동영(얼굴) 통일부 장관이 10개월여 만에 어깨를 폈다. 남과 북이 당국 회담 재개에 합의했기 때문이다. 지난해 7월 1일 취임 때부터 꽉 막혔던 남북관계의 숨통이 트일 만한 실마리를 잡은 것이다.

휴일인 15일 출입 기자단과의 오찬에서 정 장관 표정은 상기돼 있었다. 맥주 '원 샷' 건배를 잇따라 제의하며 "지난 10여개월 동안 남북관계를 업그레이드시키려 했지만 안 됐다. 오히려 정체되고 지체돼 왔다"며 답답했던 그동안의 마음 고생을 털어놓았다.

"당국 회담 재개는 국민에게 '단비'"라는 정 장관의 말처럼 이번에 재개되는 차관급 회담은 그에겐 더욱 갈망해 온 '단비'다.

지난해 7월 "김일성 10주기 조문을 위한 박용길 장로의 방북을 허가치 않았다"는 정 장관의 국회 발언은 남북관계가 막히는 계기였다. 이후 정 장관 자신의 데뷔전으로 예정돼 있던 8월의 제15차 장관급 회담이 취소됐다. 취임 이후 한 달 동안 남북대화사무국의 자료를 훑었던 과외 공부는 수포로 돌아갔다. 그러고는 악재와 모욕의 연속이었다.

탈북자의 대량 입국 사태 땐 "기획 탈북을 자제해 달라"는 발언으로 북한을 달래려 했지만, 이후 시민단체와 북한 당국의 틈에서 공적(公敵)으로 몰렸다.

지난해 11월엔 북한 측 관계자들이 방북한 남측 인사들에게 "정 장관은 평양 땅을 한 번도 못 밟는 통일부 장관이 될 수도 있다"는 말까지 했다. 또 12월엔 개성공단 입주 업체의 첫 제품 출시행사를 위해 개성을 방문했다가 우리로 치면 정부의 국장급에 불과한 북측 인사에게서 외면당하는 수모를 겪었다.

이런 와중에 지난 5월 초엔 모친상까지 겹쳐 출입 기자들 사이에선 "정 장관의 머리숱이 눈에 띄게 줄었다"는 얘기까지 돌았다.

이런 정 장관에게 남북 대화 재개는 희소식임이 분명하지만 상황은 그리 좋지 않다.

이번 당국 회담이 장관급 회담으로 이어질지부터가 불분명하다. 또 장관급 회담이 열리더라도 통일 문제엔 아마추어인 정 장관이 대화 테이블에서 '내공'을 발휘할 수 있을지에 대한 우려도 분분하다.

미국과 북한이 주도하는 핵 문제는 남북 대화에서 정 장관의 운신 폭을 줄이고 있다. 개성 회담의 결과가 어떻든 간에 정 장관은 간단치 않은 시험대에 선 듯하다.

서승욱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