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대회 안 나오면 나도 안 가” … 니클라우스·파머 신경전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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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호 20면

PGA 투어 플레이어스 챔피언십에서 우승한 최경주(가운데)가 18일 서귀포 핀크스골프장에서 열린 SK텔레콤 오픈 프로암대회에서 동반자들과 활짝 웃으며 얘기를 나누고 있다. [중앙포토]

최경주(41·SK텔레콤)가 KJ Choi 인비테이셔널을 만들기로 했다. 상금 75만 달러가 걸린, 국내에서 손꼽히는 규모의 대회로 10월 열릴 계획이다. 최경주와 친분이 있는 스타들도 참가할 전망이다. 그의 꿈이 실현되는 것이다. 그는 4년 전 이런 대회를 만들려고 결심했다고 한다. 잭 니클라우스가 주최하는 메모리얼 토너먼트에서 우승했을 때다.

선수들이 만든 대회는 ‘명예의 대결장’

니클라우스는 마스터스를 만든 ‘골프의 성인’ 보비 존스를 존경했다. 평생 아마추어로 남은 존스처럼 프로로 전향하지 않고 아마추어로 마스터스와 디 오픈, US오픈 정도에만 출전하려고 했을 정도다. 1966년 마스터스에서 세 번째 우승한 후 자신도 또 하나의 마스터스를 만들겠다고 결심했다.

‘골프의 역사와 전통을 지키는 세계적인 대회’, 즉 메이저대회를 만들려는 의도였다. 최경주가 고국에 대회를 열겠다고 생각한 것처럼 니클라우스는 태어나 자라고 골프를 배운 오하이오주 콜럼버스 지역에 대회를 만들고 싶어 했다. 그는 콜럼버스 인근 뮤어필드 빌리지 계곡의 땅을 샀고 혼이 담긴 골프장을 만들었다. 결실은 그가 36세이던 76년 이뤄졌다.

그가 만든 뮤어필드 빌리지 골프장은 마스터스를 여는 오거스타 내셔널과 분위기가 흡사하다. 대회 이름도 메모리얼(The Memorial Tournament)로 마스터스(The Masters Tournament)와 비슷하다. 메모리얼은 원래 메모리얼 데이(5월 마지막 월요일)가 낀 주말에 했는데 이 즈음 오하이오 지역에 악천후가 잦아 지금은 6월 초로 연기했다. 대회에는 매년 위대한 골퍼의 헌정 행사가 열리는데 첫 주인공은 역시 보비 존스였다. 지난해는 얼마 전 뇌종양으로 세상을 뜬 세베 바예스트로스를 기념했다.

메모리얼은 매우 권위 있는 대회다. PGA 투어에서 ‘제5의 메이저’를 놓고 최경주가 최근 우승한 플레이어스 챔피언십과 경쟁했다. 최경주는 플레이어스 챔피언십 우승 이전에 “플레이어스 챔피언십보다 메모리얼이 더 권위 있는 대회”라고 한 적이 있다. 스타급 선수들은 메모리얼을 더 친다.

라이벌 골프장에 “단조롭다” 혹평
메모리얼이 공식적으로 제 5의 메이저대회가 됐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의 라이벌이었던 아널드 파머와, 20년 동안 PGA 투어 커미셔너를 지낸 딘 비먼이 원치 않았다. 비먼은 대신 플레이어스 챔피언십을 만들어 엄청난 돈을 쏟아 부어 메이저대회로 키우려 했다.

니클라우스와 비먼은 악연이 많다. 니클라우스는 오랜 친구이자 어릴 적 맞수 비먼이 커미셔너가 될 때 반대했다. 또 비먼이 골프 코스 개발을 하면서 자신의 골프 디자인 사업과 경쟁 구도를 만들기도 했다. 니클라우스는 비먼이 스타 선수를 죽이고 평범한 선수를 위한 사회주의적 투어를 만들려 한다고 생각했다. 니클라우스는 “메이저대회는 돈으로 살 수 없다”면서 비먼을 비난했으나 결정권을 가진 비먼을 이길 수 없었다.

니클라우스가 플레이어스 챔피언십 이상으로 비교당하기 싫어한 대회는 아널드 파머가 만든 베이 힐 클래식(현재는 아널드 파머 인비테이셔널)이었다. 니클라우스는 아널드 파머가 실력은 별로인데 외모와 쇼맨십으로 인기를 얻은 선수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골프 코스 디자인에선 경쟁자로 여기지도 않았다. 이름만 빌려주고 돈을 챙겨가는 사람이라고 봤다. 그는 아널드 파머 인비테이셔널이 열리는 베이 힐 골프장에 대해 “전장이 길어서 어렵긴 한데 매우 단조로워 기억나는 홀이 하나도 없다”고 했다.

마스터스를 만든 보비 존스처럼 니클라우스는 대회에 회사 이름이 가능한 한 드러나지 않기를 바랐다. 때묻지 않은 성소로 만들고 싶어 했다. 반면 아널드 파머의 베이 힐 골프장은 부동산 개발을 위해 만들어진 상업적인 코스다. 또 초창기부터 타이틀 스폰서를 붙였다.

그렇다고 해서 아널드 파머의 대회가 B급은 아니다. 니클라우스에 대한 경쟁심에 불타는 파머는 메모리얼 창설 3년 후인 79년 자신의 대회를 만들었다. 선수를 뺏겼지만 이를 뒤집으려고 노력했다. 니클라우스가 자신의 대회에 나오지 않으면 메모리얼에도 나가지 않았다. 가장 좋은 날짜와 가장 좋은 선수들을 놓고 니클라우스와 경쟁을 했다. 스타 선수들도 파머 때문에 아널드 파머 인비테이셔널에 거의 빠지지 못한다. 파머의 대회에서는 타이거 우즈가 4연속 우승하는 등 스타들이 좋은 성적을 거뒀다. 올해 우즈가 부상 때문에 이 대회에 나가지 못했을 때 따로 전화를 해서 양해를 구했다고 한다.

메모리얼과 마찬가지로 아널드 파머 인비테이셔널도 지역사회에 큰 공헌을 한다. 수익금은 아널드 파머 메디컬 센터와 위니 파머(아널드 파머의 작고한 부인) 산모 영아 병원에 기부를 한다. 최경주도 수익금을 지역사회에 기부하고 지역민의 자원봉사를 받는 선진 골프대회 시스템을 만들고 싶어 한다.
PGA 투어에 선수가 주최하는 또 하나의 전통 있는 대회는 바이런 넬슨 챔피언십이다. 넬슨(1912~2006)은 나이가 90대에 들어서도 18번 홀 옆 천막에서 선수들을 지켜보며 우승자를 격려했다.
이 대회는 자선 기금을 가장 많이 모으는 대회로 유명하다. 넬슨은 “나에게 이 대회는 마스터스나 US오픈 우승이나 11연승 기록보다 중요하다. 이 대회는 사람들을 돕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대회 만들기보다 유지가 더 힘들어
선수들이 주최하는 대회는 전통적으로 초청(인비테이셔널) 대회다. 마스터스의 전통을 차용한 것이다. PGA 투어에서 초청대회는 5개(아널드 파머 인비테이셔널과 헤리티지, 크라운 플라자 인비테이셔널, AT&T내셔널)인데 헤리티지를 제외하곤 모두 선수가 주최하는 대회다. 크라운 플라자는 벤 호건, AT&T는 타이거 우즈의 대회라고 볼 수 있다.

보통 선수들은 초청대회를 좋아하지 않는다. 일반 대회 참가 선수는 156명이지만 초청 대회는 120~132명 정도로 줄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회를 주최하는 수퍼스타들은 B급 선수들이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또 PGA 투어의 랭킹 시스템에 구애받지 않고, 강력한 통제력을 가지고 선수를 고를 수 있기를 원한다. 메모리얼의 경우 자동출전 선수는 전년도 상금랭킹 75위 이내에 한정되며 나머지는 주최 측에서 선정한다.

선수들이 만든 대회는 다른 종목에서는 찾기가 쉽지 않다. 골프에서는 보비 존스라는 강력한 권위자가 있었다. 존스가 만든 마스터스는 메이저 중의 메이저대회로 성장했다. 그러나 이후 생긴 대회가 영원하리라고 보장할 수는 없다. 메모리얼은 90년대 표가 매진됐지만 현재 그 정도는 아니다. 바이런 넬슨이 작고하자 타이거 우즈는 그 대회에 나가지 않았다. 파머가 세상을 뜬다면 수퍼스타들은 베이 힐에 나타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최경주는 자신의 이름을 딴 대회를 만들겠다는 꿈을 이뤘지만, 더 큰 도전은 지금부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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