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가게] "피부색 달라도 이웃사랑은 같은색"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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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리우스 그리니어스 주한 캐나다대사(가운데)가 가족·직원과 함께 14일 아름다운 가게 안국점에서 시민들에게 갓 구운 베이글 빵을 팔고 있다. 임현동 기자

14일 오전 서울 종로구 아름다운 가게 안국점에 '빨강머리 앤'이 나타났다. 같은 이름의 소설 주인공 앤처럼 차려입은 소녀들이 가게 입구에서 베이글 빵을 직접 구워 즉석에서 시민들에게 팔기 시작했다.

옆에선 연두색 앞치마를 두른 캐나다인 부부가 얼굴에 장난기가 가득한 남자아이 둘과 함께 환하게 웃으며 손님을 맞고 있다. 이들은 마리우스 그리니우스(56) 주한 캐나다 대사와 가족으로 이날 '중앙일보와 함께하는 아름다운 토요일' 행사에 참석해 봉사활동을 벌이고 있었던 것이다.

주한 캐나다 대사관은 2003년 12월 주한 외국대사관 중에서 처음 '아름다운 토요일'행사를 개최했으며 이날 직원과 그 가족들이 가정과 사무실에서 쓰지 않는 물건을 모아 다시 한번 행사를 열었다. 특히 가정의 달인 5월을 맞아 '어린이'를 주제로 장난감.동화책.유아복 등 어린이 관련 물품 1300여점을 들고 나왔다.

지난해 8월 부임한 마리우스 대사의 가족도 처음 맞는 아름다운 토요일을 위해 캐나다 선주민 수공예품인 어린이 가죽신과 양 모양의 유아복, 어린이 안전 카시트 등을 내놨다.

그리니우스 대사는 "두 아이의 손때가 묻은 소중한 물건들인 만큼 좋은 주인을 만났으면 한다"고 말했다. 대사 부인 캐럴린 그리니우스(38) 여사도 "캐나다 주부 사이에서는 질 좋은 재활용품을 싼값에 잘 사려는 경쟁이 대단하다"며 "캐나다가 환경을 중시해서 그런지 재활용품 판매점에서 물건을 사고파는 일이 흔하다"고 소개했다.

캐나다 대사관에서 어린이 물품을 대거 기증한다는 소식에 이날 행사장에는 자녀를 데리고 나온 시민들이 많았다. 가게 단골이라는 최이선(35.여.종로구 청운동)씨는 "아기 턱받이.배내옷.모자 등 꽤 여러 가지를 골랐는데 만 원어치도 안 된다"며 8개월 된 아들을 안고 뿌듯한 미소를 지었다.

한국에 거주하는 캐나다인들도 행사 소식을 듣고 여러 명이 가게를 찾았다. 영어학원 강사로 일하는 캐나다인 셰일라 해이지스는 "본국에서 즐겨 이용하던 '굿 윌 스토어'와 비슷한 가게가 한국에도 있어 아주 반갑다"며 배낭.실크가방.바지 등 구입한 물건을 들어 보였다. 한편 캐나다 대사관은 이날 재활용품을 팔아 얻은 수익금 380만원을 가게 측에 전달했다.

박수련 기자 <africasun@joongang.co.kr>
사진=임현동 기자 <hyundong30@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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