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미국 경제팀 리더는 가이트너 재무장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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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런스 서머스 전 미국 국가경제위원장이 22일 신라호텔에서 글로벌 경제 이슈에 대해 의견을 말하고 있다. 그는 답변하는 동안 잇따라 물을 마셨다. [김상선 기자]

그리스는 유로(euro) 시스템 위기의 도화선일 수 있다. 그리스가 빚을 갚지 못하면 유럽 은행들이 먼저 깊은 상처를 입는다. 이어 신용파생상품 시장으로 번질 가능성이 크다. 과연 유로 시스템은 이 사태를 견딜 수 있을까. 서머스는 “내가 보기엔 유럽 리더들이 유로 시스템을 지키기 위해 정치적으로 확고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고 말했다.

 -의지만으론 사태를 해결하기 어렵지 않을까.

 “유럽 리더들은 현재 재정적자와 경제위기를 해결하기 위해 풍부한 상상력을 발휘해야 한다. 추상적인 원칙을 고집할 게 아니라 실용적 처방을 과감하게 쓸 수 있어야 한다.”

 -유럽 정치인들의 리더십이 약하다는 지적이 있다.

 “내가 생각하기엔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나 니콜라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은 미래지향적이다. 유럽 리더들이 유로 시스템을 지키는 데 필요한 조치들을 취해 나가길 희망한다.”

 서머스는 유럽 정치리더들에 대한 생각을 드러내려고 하지 않았다. 평소 직설적으로 말하던 태도와는 사뭇 다른 모습이다. 정치적으로 민감한 사안이긴 했다. 미국 국내 문제로 화제를 돌렸다.

 -오바마의 2기 경제팀이 꾸려진 지 서너 달 지났다. 누가 중심인가.

 “티머시 가이트너(50) 재무장관이 리더다. 그는 오바마 대통령 취임 이후 줄곧 재무장관을 맡고 있다. 그가 현재 경제팀 리더다.”

 -국가경제위원장이 정책 방향을 결정하지 않는가.

 “분명히 가이트너가 경제팀 리더다. 가이트너는 아주 강단 있고 아주 효율적으로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실용적이기도 하다. 그는 여러 분야의 경제정책을 이끌고 있다.”

 -가이트너가 부채한도 문제를 풀지 못하고 있는 듯하다.

 “미국 법에 따르면 의회는 정부의 부채한도를 정할 수 있다. 불행하게도 현재 많은 사람이 대화하고 타협하기보다는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부채한도를 지렛대로 사용하고 있다.”

 -백악관과 공화당은 상대를 공격하기만 하지 않는가.

 “상대를 협박하거나 위협해서는 풀리지 않는다. 많은 미국인들은 장기적으로 연방정부의 지출을 줄이고 세금을 더 거둬 재정문제를 줄여야 한다는 데 동의하고 있다. 이를 위해선 건강보험 부담을 합리적으로 줄이고 세금체계를 고쳐야 한다. 현재 미국 조세제도엔 세금을 피할 수 있는 허점이 너무 많다.”

 부채한도 문제를 말할 때 서머스는 책상을 치면서 한마디 한마디에 힘을 줘 말했다. 그는 마치 국가경제위원장으로서 처방을 제시하고 있는 듯했다.

 -여전히 국가경제위원장이라면 오바마 대통령에게 어떤 전술을 조언하고 싶은가.

  “우선 오바마 대통령은 국가 재정문제를 두고 협박하거나 위협하는 일은 용납할 수 없음을 분명히 해야 한다. 둘째, 의회와 협상의 여지를 넓혀야 한다. 셋째, 재정적자를 줄이고 정부의 수입을 키우는 쪽으로 움직여야 한다. 앞서 말했듯이 건강보험 비용을 억제하는 게 급하다. 연방정부 예산 가운데 건강보험 재정이 차지하는 비율은 앞으로 5년 동안 해마다 1%씩 늘어날 것이다.”

 서머스의 조언 가운데 건강보험은 오바마의 현재 정책과 좀 다르다. 월스트리트 저널(WSJ) 등은 “서머스가 국가경제위원장 시절 건강보험 전면 확대에 반대해 오바마와 충돌하기도 했다”고 전했다. 오바마 대통령 쪽은 여전히 건강보험 확대를 수정하려 하지 않고 있다.

 -조언이 오바마나 가이트너의 방침과 다르다는 느낌이다.

 “나는 그렇게 생각지 않는다. 오바마 대통령이나 가이트너 재무장관 모두 재정문제가 심각한 상태라는 점은 익히 알고 있다. 정부의 재정상태를 놓고 협박하는 전술은 용납할 수 없다는 점에도 동의한다. 재정문제를 놓고 나와 오바마·가이트너의 의견은 아주 유사하다고 생각한다.”

 서머스는 한국과 인연이 깊다. 그는 1998년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 대가로 긴축 처방을 내놓은 중심 인물로 알려져 있다. 한국에 대한 소회가 남다를 듯했다.

 -얼마 만에 한국을 다시 찾았는가.

 “98년 아시아 금융위기 뒤에도 서너 차례 한국을 찾았다. 하지만 한국이 위기에서 벗어나 회복한 것이 아주 인상적이다.”

 -한국에선 빈부갈등이 심해지고 있다. 이런 틈바구니에서 경제정책 담당자들은 어떻게 조화를 찾을 수 있을까.

 “노동자들의 교육기회를 늘리는 데 예산을 더 많이 써야 한다. 그들과 대화하고 협상할 때 공직자는 아주 공정해야 한다. 공개입찰이 아닌 방식으로 큰돈이 되는 프로젝트나 면허를 부자들에게 주지 말아야 한다.”

 서머스는 이렇게 말한 뒤 검지손가락을 펴 보였다. 한마디만 더하겠다는 뜻이었다.

 “한국 재벌 지형은 98년 이후 많이 바뀌었다. 많은 재벌이 사라졌다. 지배구조도 개선돼 외부 투자자의 의견이 경영진에 전달될 수 있게 됐다. 하지만 재벌들의 대마불사(too large to fail)는 여전히 큰 문제다.”

강남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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