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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근감사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219호 33면

기업의 ‘상근감사’는 한국과 일본에서나 찾아볼 수 있는 독특한 자리다. 미국이나 영국·독일 등 자본주의 선진국들을 보면 기업에서 상근감사를 찾아보기 힘들다. 이사회 안에 있는 감사위원회가 ‘내부감사인(internal audit)’ 기능을 하는데, 그 멤버는 사외이사들로 채워진다.

김광기의 시장 헤집기

미국 기업에 상근감사가 없는 것은 이사회 자체가 포괄적으로 감사 기능을 맡기 때문이다. 미국 기업들은 일찌감치 소유와 경영이 분리된 뒤 전문경영인의 전횡이 문제로 떠올랐고 이를 견제·감시할 장치로 이사회 기능을 키워 왔다.

이사회는 일반 주주들을 대신해 경영진의 탈법과 비리를 감시·감독하고 회사의 재산을 보호하는 역할을 해 왔다. 이사회 전체가 이런 감사 기능을 하다 보니 상근감사를 따로 둘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독일 같은 유럽의 기업들은 이사회가 이원화돼 집행이사회가 감독이사회로 나뉘어 기능하는데, 감독이사회가 바로 감사 기능을 수행한다. 역시 상근감사가 없는 이유다.

한국과 일본이 상법을 통해 대형 주식회사에 ‘상근감사’를 두도록 한 것은 이사회 기능이 너무 약했기 때문이다. 소유와 경영이 대부분 일치하고 경영진과 이사회를 구분하기도 힘들었던 시절, 그나마 경영진을 견제·감시할 창구로 ‘상근감사직’을 의무화했던 것이다.

아시아 금융위기 이후 두 나라의 감사제도는 좀 달라졌다. 한국은 기업지배구조 개선을 위해 이사회 기능을 강화하면서 자산 2조원 이상 상장기업에 대해 감사위원회를 두도록 했다. 미국을 본떠 감사위원회 멤버의 3분의 2는 사외이사로 채우도록 했다. 대신 이런 회사는 상근감사를 두지 않아도 된다. 일본도 비슷하게 제도를 바꿨다.

형식은 이렇게 차이가 있지만 내부감사에 주어지는 소임은 어디나 같다. 경영진이 법규정을 준수하고 회사 재산을 허투루 쓰지 못하도록 감시하면서 회계 기록을 꼼꼼히 관리하는 일이다.

그런데 한국은 ‘제도 따로, 현실 따로’인 경우가 많다. 금융회사와 공기업이 특히 그렇다. 상근감사라고 하면 그저 머리 아픈 일 없이 보수를 두둑이 받는 ‘꿈의 자리’로 통한다. 굳이 역할을 찾는다면 대주주나 경영진을 도와 로비를 하거나 외풍을 막는 일이다.

기업들도 문제가 있었지만 힘깨나 쓴다는 경제부처·금융감독원·감사원 등의 공직자들이 그렇게 만들었다. 로비가 필요한 환경을 만들고, 그 해결사로 낙하산 감사를 내려보내는 방식이다.

과유불급(過猶不及)이라 했던가. 저축은행 사태를 계기로 공직자들의 낙하산 관행이 철퇴를 맞았다. 대통령까지 나서 전관예우를 질타했다. 전직 관료와 금감원 출신자들의 낙하산 시대는 그렇게 저물고 있다. 그러면 이제 달라질까. 아닐 것 같다는 비관론이 여전하다. 바로 정치권 때문이다. 공직자들이 떠난 자리를 정치권 실세와 그 측근들이 메우는 것 아니냐고 걱정하는 소리가 크다. 그렇다면 분명 개악이다.

대통령이 나서는 수밖에 없다. 공정한 사회로 가는 길이 바로 곁에 있다. 이번 기회에 정치권 낙하산까지 접힌다면 국민은 박수로 화답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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