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급 대담] 벤처기업 재투자 붐 괜찮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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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화 벤처기업협회장(메디슨 회장)과 최동규 중소기업연구원장이 지난 28일 서울지방중소기업청에서 중소기업특별위원회가 끝난 뒤 최근의 벤처투자 열풍을 진단하기 위해 만났다.

▶이민화 회장〓벤처기업들이 벤처기업에 대한 투자를 늘리고 벤처 자회사를 만드는 것은 불가피한 생존전략이다. 지금은 기업대 기업간의 전쟁이 아니다. 기업주변의 생태계가 얼마나 생존에 유리한 지를 다투는 방식으로 경쟁 패턴이 바뀌고 있다. 한 우산 아래 모여 있으면 급속한 기술개발 속도에 적응하기가 어렵다. 출발 단계의 벤처기업은 성공 확률이 낮다. 이런 점에서 벤처기업들은 무리(群)를 지을수록 생존 확률이 높아진다. 각각의 벤처에 대한 소유권을 수직적으로 지배하지 않으면서 '벤처연방공화국' 을 만드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최동규 원장〓벤처투자는 새로운 패러다임이다. 과거에는 존재하지도 않았다. 손정의(일본 소프트뱅크 회장)모델이 자신감을 심어준 게 사실이다. 벤처에서 번 돈을 벤처에 쏟는 것은 벤처기업 경영의 경험을 토대로 한 것으로 이해한다. 이같은 투자는 벤처캐피탈의 본질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벤처기업들이 대기업 경영의 폐단인 선단식 경영을 하고 있지 않느냐는 우려도 없지 않다. 대기업들의 벤처투자도 마찬가지다.

▶이〓대기업들이 벤처기업에 투자하는 것을 폄하할 이유는 없다고 본다. 대기업과 벤처기업들이 국가차원의 자원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손을 잡는 것은 좋다. 그러나 전경련이 최근 '벤처기업의 허와 실' 이라는 보고서를 낸 직후 오비이락(烏飛梨落)격으로 대기업들이 벤처투자에 너도나도 뛰어들고 있다. 벤처투자 펀드 조성을 하겠다고 발표했다가 취소했던 해프닝마저 있었다. 이런 현상을 보면서 벤처기업을 흔들어서 싼 값에 사들이려는 의도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외국의 대기업도 벤처투자를 많이 하고 있지만 이들은 벤처정신으로 성공한 회사로 국내 대기업과는 태생적으로 차이가 있다.

▶최〓대기업들이 벤처에 대한 투자에 발벗고 나서고 있는 이면을 들여다 볼 필요가 있다. 대기업은 리스크 테이킹(위험흡수) 훈련이 덜 된 조직이다. 벤처경험이 없었고 다분히 벤처투자로 벌어들일 수 있는 이익이 높다는 현실적 판단이 크게 작용한 것 같다. 벤처기업에 대한 투자가 소유지배를 위한 것이라면 후유증이 적지 않을 것이다. 손정의식 투자방식은 투자한 벤처기업의 지분 가운데 35% 이상은 갖지 않는다는 것이다. 다행히 아직까지 대기업들이 벤처기업을 계열화하려는 현상은 나타나고 있지 않지만, 과연 그런 기조를 지킬 것인지는 더 두고 볼 필요가 있다. 만일 그런 징후가 있으면 대기업의 벤처 투자를 규제할 방법을 찾아야 할 것이다.

▶이〓대기업의 벤처 투자에 대한 규제는 숙고해야 한다. 벤처투자 환경을 급속히 냉각시킬 우려가 있다. 다만 벤처기업들이 대기업으로부터 투자를 받고 그들의 네트워크를 빌리는 제휴는 바른 방향이다.

▶최〓연계협력은 바람직하다. 투자도 하고 마켓팅력을 빌리면 시너지 효과가 날 것이다. 하지만 정부가 벤처투자 쪽으로 일방통행식으로 몰아가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일반 중소 제조업체들도 처음에는 다 '벤처기업' 이었다. 중소 제조업체와 벤처기업이 힘을 모으면 시너지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중소기업이 잘되는 나라가 벤처기업도 잘된다. 이런 점에서 벤처기업의 자세도 중요하다. 일부 벤처기업들이 대기업과 창투사의 투자를 끌어들이 위해 무리한 사업게획을 발표하는 경우도 있다.

▶이〓벤처들이 자신과 관련 없는 분야의 투자나 부동산 투자를 하는 사례는 극히 일부분일 것이다. 부분을 보고 전체를 재단하면 안된다. 그것은 '반(反)벤처정신' 이다.

▶최〓벤처도 엄연한 기업인 만큼 돈 버는 것을 나무랄 수는 없다. 하지만 국내 벤처기업가 중 일부는 어느 정도 기술개발을 해놓고 돈을 먼저 챙기려 드는 사례도 생기고 있는 게 현실이다. 벤처기업가의 정신은 독립에 대한 강한 열망이 이뤄 졌을 때의 희열이다. 경제적 지위 향상은 그 다음이다. 빌 게이츠(미국 마아크로 소프트 회장)는 2백억달러가 넘는 돈을 공익재단에 기부했다. 벤처기업의 세계는 다산다사(多産多死)형이다. 벤처기업이 안 망하는 것은 자랑스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투자자들이 그런 인식을 하고 있지 않다. 성공에 대한 기대감이 너무 높은 것도 우려되는 대목이다. 샐러리맨.주부들까지 나서 엔젤투자에 나서는 것은 '파인내스 사태' 의 재판이 될 수도 있다.

▶이〓투자정보가 공유되지 않기 때문에 그런 위험성이 지적된다. 그래서 몇몇 벤처기업들이 모여 국민펀드를 만들겠다고 나선 것이다. 개인들이 엔젤투자에 무턱대고 나서는 것은 자제해야 한다.

<정리〓고윤희.양선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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