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생명체 복제는 자연에 대한 해적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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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체 복제의 꿈이 부풀어가는 시대다.

유전자 조작을 비롯, 첨단 생물학의 발전이 가속화하고 있다.세계 열강들은 이같은 첨단 기술이 미래 국가 경쟁력을 좌우할 지표가 될 것이라고 흥분하고 있다.

그래서 생명체에 지적 재산권을 인정하는 것은 창조성을 촉진하는 방안이라는 주장이 대세를 이루고 있다. 이의를 제기하는 목소리는 크지 않다. 지금은 첨단의 무기로 세계와 경쟁해야 한다는 당위성이 더 높은 시절이기 때문이다.

인도의 환경사상가 반다나 시바의 ''자연과 지식의 약탈자들'' (한재각 외 옮김.당대.7천5백원)은 앞만 보고 달려가는 우리가 혹시 놓치고 있는 것은 없을까란 생각이 들게 한다.

핵물리학을 전공한 시바는 서구 과학기술의 문제점을 인식하고 생태운동에 뛰어든 활동가이자 사상가다. 제3세계의 생물 다양성 문제를 제기하고 다국적 기업의 횡포를 고발하는 운동을 펴온 생태주의자이기도 하다.

시바는 창조성은 무엇인가란 질문을 먼저 던진다. 생명 특허를 둘러싼 논쟁의 배후에는 이 질문이 핵심으로 자리잡고 있다.

시바의 생각은 이렇다. 유전자 조작기술을 이용하는 생명특허는 독자적으로 번식하는 생물의 창조성을 특정인이 소유하는 행위다. 그래서 생명체의 지적재산권은 창조성을 보장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생명의 창조성을 질식시킨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녹색혁명으로 일컬어지는 벼 품종 개량이 있다. 우수한 품종만 살아남고 전통적으로 재배해온 여러 품종은 사라지게 됐다. 종의 다양성을 말살하면 미래에 예기치 않은 질병이 창궐하는 사태를 불러올 수도 있으며 이에 대처할 방법도 없게 된다는 지적이다.

최근 논란이 되는 유전자 콩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미국 GM사의 종자들은 미국 콩의 47%를 차지한다. 이 콩은 성장속도가 빠르고 병충해에도 강해 그 재배면적이 확산되는 추세인데 이 역시 생명의 다양성을 해치는 요소가 되고 있다.

시바는 세계 열강들이 거의 독점하고 있는 생명 특허를 ''생물 해적질'' (Biopiracy:책의 원제)이라고 규정한다. 이 해적질을 가능케 하는 것은 세계무역기구(WTO)의 국제지적재산권 협약이라고 그는 지목한다.

이 협약은 생물학적이 아닌 각종 유전자 조작방법과 새로운 미생물을 특허로 보호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는 생명 특허를 개인의 권리로 간주해 버리는 규정이라고 그는 비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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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협약이 가져올 문제점으로는 제초제.살충제를 견디는 유전자 조작 농산물이 재배되면서 화학적 오염이 확대되고
특허를 받은 조작 생물체가 환경에 방출될 경우에 생물학적 오염이 생기며
종이 갖는 본래의 가치보다 지적재산권이 강조됨에 따라 보존윤리가 훼손된다는 점 등이 지적된다.

시바가 내세우는 논리는 유전자 기술 개발에 몰두하고 있는 각국의 현실을 외면한 현실성없는 주장이란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하지만 시바는 "현시대의 평화를 위협하는 주범은 생명다양성에 대한 관용의 부족" 이라고 단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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