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PGA] 박지은,박희정 아버지 인터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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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대가 컸던만큼 실망도 컸던 박지은과 박희정의 데뷔전 부진. 속상하기야 당사자들보다 더한 사람이 있겠는가 마는 그들 못지 않게 피말리는 안타까움을 겪어야만 했던 사람은 바로 아버지다.

또래들은 한창 예쁘게 치장하고 친구들, 또는 애인과의 수다떨기에 정신없지만 무남독녀인‘내 딸’은 검게 그을린 얼굴에 혹독한 훈련을 받고 라운딩을 위해 새벽부터 일어나 연습장을 향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그 마음은 얼마나 쓰라릴까.

그래도 그들은 ‘딸의 성공’이란 한가지 소망을 품고 ‘야수의 심정’으로 ‘여리게만 보이는 아이’를 연습장으로, 또 대회장으로 내몬다. 그리고 자신들도 뙤약볕이 내려쬐고 강풍이 몰아치는 필드에서 샷 하나하나에 일희일비하며 함께 대회를 치른다.

Y2K 신인들의 아버지, 박수남(53·지은)씨와 박승철(44·희정)씨.

이들은 딸이 언론의 스풋라이트를 받은 만큼 좋은 성적을 거두지 못하자 실망의 기색이 역력하면서도 "매도 일찍 맞는게 좋다. 이 경험을 바탕으로 성숙한 프로선수가 되길 기대한다"고 스스로를 달랬다.

▲박수남씨

‘뉴밀레니엄을 이끌 세계적 스타’라는 언론의 찬사에 딸의 콧대가 너무 높아지지 않을까 항상 걱정하면서도 대회내내 박지은의 성적이 저조하자 "골프는 인생과 같이 잘될 때가 있으면 안될 때도 있는 아주 재미있는 스포츠"라며 애써 초조함을 떨치려한 박수남씨.

2라운드후 컷오프 통과여부가 결정될 때까지 무려 5시간여를 골프장에서 기다렸던 그는 "그냥 떨어졌으면 하는 마음도 있었지만, 그래도 컷을 통과 자신과의 싸움으로 한층 성숙해지길 바랬다"며 당시의 안타까움을 털어놓았다.

어려서 부터 고집이 센 딸에게서 승부사 기질을 발견해 골프를 가르친 그는 "지은이가 승승장구로 아마정상에 올라섰지만, 프로에서는 많은 적수가 있다는 것을 배운 좋은 대회였다"며 이 경험이 훌륭한 선수로 대성하는 밑거름이 되길 바랬다.

영어로 `지은'을 발음하기 힘들어 영어이름을 고민하던 중 본인이 좋아하는 영화배우 그레이스 켈리를 떠올렸다는 그는 "지은이가 처음에는 할머니 이름 같아서 싫다고 그랬지만 지금은 `어메이징 그레이스' 등 기자들이 제목달기 좋고 부르기 편해 좋아 한다"고 귀띔.

“스폰서계약은 어떻게 진행되고 있느냐”는 질문에 그는 "지은이가 빨리 좋은 성적을 내면 빠르면 여름에 소식이 있을것"이라고 성급한 답변을 피하는 노련함도 보여줬다.

데뷔전에 좋은 성적을 내지 못한 딸을 보며 "백마디 말보다도 한번의 경험으로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겨 나갔으면 한다"며 박씨는 지은이 `반짝스타'보다 스포츠역사에 기리 남는 훌륭한 선수가 되길 희망했다.

▲박승철씨

"뜨거운 용광로에 다시 한번 들어 가야 하겠읍니다"
박희정이 여자골퍼들의 `꿈의 무대'로 불리는 LPGA 투어 데뷔전에서 컷오프 실패후 기자와 만남에서 꺼낸 박승철씨의 첫마디에는 외동딸이 겪은 아픔은 이미 애써 지워버렸다는 독기가 가득찼다.

박씨는 골프연습장에서 심심해 하는 어린 딸에게 장난삼아 골프채를 잡게했다가 자질을 발견하곤 골프유학을 위해 아예 호주로 이주할만큼 과감한 성격의 소유자다.

박희정은 결국 호주 주니어 오픈 3연패 등 LPGA 수퍼스타인 카리 웹의 각종 기록을 깨고 세계무대인 LPGA를 노크, 지난해 퀄리파잉스쿨을 통과해 2000년 투어 풀타임 멤버로 입문했다.

그렇지만 ‘독한’ 박씨는 희정이 Q스쿨 통과한 후에도 낙하산 타기와 사격 연습 등 담력을 키우기 위한 피나는 훈련을 시켰다.

3라운드 진출 실패후 거처가 있는 올랜도로 바로 올라가지 않고 박지은을 응원하는 등 다른 선수들의 플레이보며 다음대회를 기약하는 딸의 손을 꼭 잡으며 박씨는 "희정이 생애 처음으로 컷오프를 당했읍니다. 딸이 저 안(페어웨이)에서 걸어야 하는데 저와 같이 있다는게 이상하다. 그러나 앞으로 이런 일은 다시 없을 것”이라며 딸에게 윙크를 하고 등을 도닥거렸다.

`글로리아'란 이름을 어떻게 정했냐는 질문에 "성탄절 교회에서 `영광, 영광, 할렐루야' 성가를 듣고 정했다"며 딸이 데뷔전 아픔을 잊지는 말되 빨리 극복해서 앞날에 영광만 가득하기를 기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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