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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신을 발명할 필요가 있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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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8호 16면

신에 대한 질문에는 전쟁과 평화가 걸려 있을 수 있다.
‘신은 존재하는가’라는 질문은 개인의 신앙 고민 차원에 머물 수도 있다. 그러나 ‘신은 존재하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인 유신론과 무신론은 국제 분쟁의 요소가 될 수도 있다. 20세기 자본주의와 공산주의의 대결은 유신론과 무신론의 대결이기도 했다.
‘신은 누구인가’라는 질문도 갈등을 유발한다. 이 질문에 대한 답이 같으면 같은 편, 다르면 다른 편이 될 가능성이 크다. ‘신은 누구인가’는 ‘나는 누구인가’ ‘우리는 누구인가’라는 개인이나 국가 정체성 질문과도 밀접하기 때문이다.

신은 누구인가

‘신은 누구인가’에 대해 비슷한 답이 나오면 갈등의 여지가 줄어들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유대교·기독교·이슬람은 뿌리가 같은 일신교인 데다 신은 전지전능하고 영원한 우주의 창조주로 이해된다. 그러나 예수의 신성을 둘러싼 ‘사소한’ 차이가 오히려 더 큰 분노를 분출시키기도 한다. 유신론과 유신론, 일신교와 일신교의 다툼이 더 무섭다. 제3자가 보기에는 근본적으로는 같은 신인데 당사자들은 근본적으로 다른 신이라고 인식하기도 한다.

‘신은 누구인가’라는 질문이 갈등을 부추기는 것은 얄궂은 일이다. 이 질문에 완벽히 답할 수 있는 신앙체계는 없기 때문이다. 예컨대 코란에는 창조주, 현명한, 자비로운, 강력한 등 신에 대한 표현이 99개 나온다. 100번째 표현은 없다. 신은 궁극적으로 이해할 수 없기 때문이라고 한다. 분쟁 당사자 중에서 한쪽이 세속화돼 ‘신은 누구인가’라는 질문이 더 이상 중요하지 않게 돼도 나머지 한쪽이 세속화되지 않으면 평화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세속화로 신으로부터 멀어진 상대는 더 큰 의혹의 대상이 될 수 있다.

국내적으로도 ‘신은 누구인가’라는 질문은 잠재적인 갈등요소다. 다문화사회는 다종교사회이며 다종교사회는 ‘신은 누구인가’에 대한 대답이 여럿 있는 사회다. 대답이 여럿이라는 것은 그 사회가 ‘다신교사회’라는 것을 의미한다. 다문화사회의 평화를 위해서는 역설적으로 다신교 상황을 분석하기 위해 고안된 개념들이 유용할 수 있다. 단일신교(henotheism)는 내가 믿지 않는 다른 신도 숭배할 가치가 있을 수 있다고 인정하는 다신교다. 교체신교(kathenotheism)는 믿는 신을 순차적으로 바꾸기도 하는 다신교다. 사회에 단일신교나 교체신교에 대해 긍정적인 사람이 많을수록 그 사회는 종교 평화에 가까울 수 있다.

여러 정황은 ‘신은 누구인가’라는 질문이 앞으로도 중요하다는 것을 예고한다. 세계에서 무신론자·불가지론자·무종교 인구는 11억 명이다. 나머지는 신앙을 갖고 있다. 세계 4대 종교인 기독교·이슬람·힌두교·불교는 모두 신자 수가 늘고 있다. 인간이 신앙을 갖는 것은 교육·환경이 아니라 유전자 때문이라는 주장도 있다. 볼테르(1694~1778)는 “신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신을 발명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고까지 말했다.

우상숭배는 ‘신에 대한 잘못된 믿음’으로 정의되기도 한다. 그렇게 보면 남의 신뿐만 아니라 나의 신에 대해 잘못된 생각을 갖는 것도 우상숭배다. 내가 믿는 신은 평화의 신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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