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개방 앞둔 애니시장 과제 산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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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작 물량으로 따지면 국내 애니메이션 산업의 규모는 세계 3위. 제작 인원만 1만5천여명에 달한다. 하지만 적재적소에 인력을 투입하는데 필요한 데이터 베이스조차 갖추지 못한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오랫동안 선진국의 주문에 의한 OEM(주문자 상표 부착)제작 방식에 길든 데다 제작사들이 '각개전투' 를 해 온 탓이다.

최근 한국애니메이션예술인협회가 추진 중인 애니메이션 전문가에 대한 국가기술자격시험이 눈길을 끄는 것도 그래서다. 협회는 현재 한국산업인력공단의 의뢰로 연구한 결과를 바탕으로 국회 입법을 추진하기 위한 공청회를 준비하고 있다.

2003년이면 애니메이션 시장이 전면 개방된다. 자생력을 키울 시간이 그리 많지 않다.
각 분야별 인력 관리를 체계적으로 정리한 다음에는 무엇을 해야 하나. 국내 애니메이션 산업이 넘어야 할 '산' 들을 짚어본다.

◇ 그래도 출발은 OEM

출발이 틀렸다고 판을 갈아치울 수는 없다. 하청 시스템이 국내 애니메이션 산업의 '아킬레스건' 임을 인정하는 한국애니메이션예술인협회의 강신길 감독은 "그럼에도 애니메이션 산업이 딛고 일어설 바탕은 OEM으로 축적된 기술력" 이라고 단언한다.

◇ 승부수는 창작력

정해진 캐릭터와 콘티를 그림으로 처리하는 작업은 이미 수준급이다. 유명한 해외 애니메이션이 한국에서 제작된 사실에서도 확인된다. 창작력만 더해지면 승부를 걸어볼 만 하다. 하청제작에 오래 매달린 결과 남은 것은 창작에 대한 뿌리깊은 '불감증' .혼이 담긴 스토리와 이를 풀어가는 훈련이 절실하다.

◇ 제작 공정의 세분화

오랜 창작 공백은 국내 애니메이션 제작 공정까지 단순화시켰다. 시나리오 작가는 물론 캐릭터 전문 디자이너나 로봇의 메카니즘 등을 연구하는 메카닉 전문가도 국내에선 찾아보기 힘들다. 각 공정을 세분화하고 여기에 투입될 전문가를 육성하는 일이 시급하다. 또한 애니메이션의 생명은 상상력. 이를 배가시키는 효과음이나 배경음악 등에도 지금까지 소홀했던 게 사실이다.

◇ TV시리즈의 활성화

창작 애니메이션의 경쟁력을 키우기에 더없이 좋은 게 TV시리즈다. 막대한 제작비가 소요되는 극장용 애니메이션을 제작하기 위해선 축적된 노하우가 있어야 한다. 1967년 신동헌 감독이 국내 첫 극장용 애니메이션 '홍길동' 을 선보일 때만 해도 국내 애니메이션은 일본과 비슷한 수준이었다는 게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그런데 지금처럼 격차가 벌어진 데는 이유가 있다. 바로 TV시리즈를 통해 노하우를 쌓았느냐, 그렇지 않았느냐의 차이다.

◇ 출판 만화는 젖줄

국내 출판 만화 시장은 저변이 꽤 확대된 상태. 고정적인 시장 규모가 있는데다 경쟁력 있는 작품과 개성 있는 작가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이미 검증된 출판 만화는 애니메이션으로 제작하기에 부족함이 없다. 잠재적인 관객 확보는 물론 위험 부담도 상당히 줄일 수 있다. 출판만화와 애니메이션간의 시너지 효과를 노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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