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lf&] “발렌타인 챔피언십 이글은 1억짜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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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22면

박상현은 패션감각과 끼가 한국 골프최고다. 올해는 상금랭킹 1위에 올라 한국 골프의 1인자가 되기를 원한다. [권혁재 기자]

프로골퍼 박상현(28)의 이름을 들으면 패션 디자이너 앙드레 김을 떠올리는 팬들이 많다. 박상현은 패션 브랜드 앙드레 김의 후원을 받고 있는 잘생기고 실력 좋은 선수다. 박상현은 자신의 패션에 자부심을 가지고 있는 모양이다.

그는 “빨간 바지, 파란 바지, 꽃무늬 바지 같은 걸 다 소화할 수 있다”면서 “앙드레 김에서 내 실력이 아니라 얼굴만 보고 나를 후원하기로 결정했다고 들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앙드레 김이 직접 그를 선택한 것은 아니었다. 회사의 마케팅 부서에서 그를 찍은 것이었다.

그는 “2009년 SK텔레콤 오픈에서 우승한 뒤 스포트라이트를 받자 앙드레 김 선생님이 직원들에게 ‘우리 회사에서 골프 선수를 후원하느냐’고 물었고 이후 그와 처음 전화 통화를 했다”고 말했다. 앙드레 김은 그를 매우 아꼈다고 한다. 자신이 직접 만든 턱시도를 선물했다. 지난해 여름 앙드레 김이 세상을 떠났을 때 박상현이 남달리 슬퍼한 것도 이런 인연 때문이다.

앙드레 김의 패션쇼에 나왔던 이승엽·우지원 같은 스포츠 스타처럼 박상현의 외모는 주변 사람들의 눈길을 끈다. 팬들은 특히 이국적인 박상현의 눈이 매력적이라고 한다. 박상현은 “지금은 좋게 봐주지만 예전엔 놀림감이었다. 어릴 적 필리핀에 전지훈련을 가서 한국 식당에 들르면 ‘필리핀 아이가 한국말 정말 잘한다. 어디서 배웠느냐’는 말을 자주 들었다”고 말했다. 그의 별명은 그래서 ‘동남아 왕족’이다.

박상현은 현재 KPGA투어에서 김경태에 이어 상금랭킹 2위다. 발렌타인 챔피언십 마지막 홀에서 이글을 잡으면서 3위에 오른 것이 컸다. 박상현은 “워낙 큰 대회이고 유명한 선수들이 많이 나와 10위 이내 상금은 보지도 않고 10~30위까지의 상금만 찾아봤다. 그런데 예상보다 훨씬 좋은 3위에 올랐다. 마지막 홀에서 이글을 한 뒤 이게 얼마짜리 이글인가 궁금할 정도였다”고 말했다. 3위 상금은 2억2000만원이었다. 그는 마지막 홀에서 이글을 하면서 6위에서 3위로 올라섰는데 그 차이가 1억원이었으니 1억원짜리 이글을 한 셈이다. 박상현은 여세를 몰아 올해 상금랭킹 1위와 다승왕을 노린다. 12일 개막한 볼빅 군산CC 오픈에 참가한 박상현은 “상금랭킹 1위 등극이 가능할 것 같다. 이 대회에서 역전을 노린다”고 말했다.

그는 자신감이 충만하다. 그러나 골프가 싫었던 때도 있었다고 털어놨다. 2006년 갑자기 공을 때리는 것이 지겨워져 군대에 갔다. 전투경찰이었다. 그는 운전병이었는데 승합차를 몰고 시위 현장으로 출동해 밥을 보급했다.

“나 없으면 수백 명이 굶어야 하니 그들에겐 내가 가장 중요한 사람이었다”며 웃었다. 소음과 피로, 투쟁이 얽힌 시위 현장을 다니면서 골프를 했던 자신이 매우 행복한 사람이었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한다.

박상현은 찬스에 매우 강하다. 상금이 많은 발렌타인 챔피언십에서 한국 선수 중 가장 좋은 성적을 낸 것이 보여주듯 큰 판에서 사고를 친다. 2007년에도 그랬다. 군 복무 중 휴가를 받아 KPGA투어 퀄리파잉 스쿨에 나갔는데 덜컥 합격을 했다. 군에서 골프 클럽을 잡아보지도 못했던 선수가 베테랑도 벌벌 떤다는 Q스쿨을 통과하는 것은 기적 같은 일이었다. 박상현은 “감이 없으니까 무조건 짧게 잡고 군인정신으로 들입다 치니 되더라”고 회고했다.

그는 이듬해 6월 제대했다. 그러나 남아 있는 대회가 많지 않았다. 그해 번 상금은 총 400만원이었다. 다시 지옥 같다는 Q스쿨을 봐야 할 처지였다. 그러나 마지막 대회인 KPGA 챔피언십 직전 결원이 생겼고, 박상현은 대타로 출전해 준우승을 했다. 여세를 몰아 2009년에는 SK텔레콤 오픈 등에서 2승을 거뒀다.

지난해엔 성적이 그리 좋지 않았다. 전지훈련을 가서 호주인에게 레슨을 받았는데 너무 짧은 시간이라 적응을 하지 못한 상태로 투어에 나왔기 때문이라고 한다. 박상현은 지난 연말부터 감이 돌아왔고 겨울 훈련도 충실히 했기 때문에 올해는 좋은 성적을 낼 자신이 있다고 했다.

그는 성격이 밝고 긍정적이다. 골프를 하게 되면서 여러 사람을 만나며 좋은 성격을 가지는 것이 다방면에서 좋다는 것을 알게 됐다고 한다. 발렌타인 챔피언십 3, 4라운드에서 더스틴 존슨(미국)과 함께 경기할 때도 그랬다.

“나보다 30야드 정도를 더 멀리 치더라. 그러나 나는 그도 사람인 것을 알고 있었다. 나를 응원하는 팬들이 더 많다고 생각했고 집중력이 더 좋은 선수가 이긴다고 생각했다. 결국 그렇게 됐다”고 말했다.

박상현은 남자 골프의 인기가 여자 골프보다 훨씬 올라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남자 골프는 선수층이 두터워 스타 선수가 계속 좋은 성적을 거두기가 어렵다는 것이 약점이다. 그러나 선수들의 기량이 출중하기 때문에 팬들에게 진정한 골프의 멋을 보여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글=성호준 기자
사진=권혁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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