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시론

'줄탁'의 인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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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아이의 등교 준비에 정신없이 분주한 아침나절 문득 전화벨이 울렸다. 조심스레 자신을 밝히는 카랑한 목소리. 아, 고등학교 때 가정 과목을 가르치셨던 선생님이다. 우연히 신문에서 내가 발표한 신간의 광고를 보고 출판사에 문의하여 연락처를 알아냈다며 담뿍 감개에 겨워 말씀하시는데, 못난 제자는 반갑기에 앞서 죄송스러워 쩔쩔매기만 했다. 선생님이 말씀하신다.

"고맙다!"

먼저 연락드리지도 못하고, 찾아뵙지도 못하고, 심지어 사는 일에 쫓겨 까맣게 잊고 지냈는데도 선생님은 내게 고맙다 하신다. 고작 요만큼 세상에 이름을 내걸고 사람 구실을 해보려 발버둥치고 있는 게 선생님께는 그렇게 미쁘고 고마운 일이라신다.

사실 나는 좋은 제자가 아니었다. 어린 날 나는 삐딱하고 건방진 아이였고, 권위를 부정하고 보호와 관심을 거부하는 데 최선을 다했다. 학창 시절에 나의 오만은 절정에 달하여 가족은 없다, 스승은 없다는 공식을 가슴에 새기고 다녔다. 그런 내게 가족과 스승에 대한 좋은 기억이 남아있다면 오히려 이상한 일일 테다. 마찬가지로 선생님들도 사람인 이상 나처럼 냉소적이고 반항적인 학생에게 무조건 무한정의 애정을 쏟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더구나 불행하게도 내 기억 갈피 갈피에 여태껏 남아 있는 선생님들은 예민한 성장기에 쓰린 상처를 주었던 분들뿐이니, 방자하고 고약한 기억을 탓해야 할 것인가. 비평준화 지역에서 중.고교 시절을 보낸 나는 무수한 체벌과 강압적인 규율에 시달렸다. 지금도 이해할 수 없는 이유로 따귀를 맞고 자퇴를 하겠노라 날뛰었던 적도 있고, 편견과 편애로 아이들의 가슴을 멍들게 했던 담임에게 복수하는 심정으로 눈에 불을 켜고 공부한 적도 있다. 대학 시절에는 공공연히 '여성 교육 무용론'을 말하던 은사에게 학점을 깎인 일까지 있다. 과연 이 모두가 나의 개인적인 불행일 뿐인가?

사교육의 범람 속에 교권이 추락하고 학교가 붕괴되고 공교육이 무용화된다는 우려와 비판의 목소리가 크다. 하지만 냉정한 사회와 무례한 학부모 역시 그들에게 배우며 자랐다. 교사는 노동자가 아니라 성자에 가까워야 한다는 당위가 권위와 위엄을 부과했을지언정, 제자들을 이해와 사랑으로 보듬어 함께 배우고 성장하는 교육의 주체로서 스승을 만들지 못했던 것이다. 교육계는 패배주의와 피해의식을 벗고 '그들만의 세상'에서 탈출해야 한다. 또한 스승의 상실을 개탄하기 이전에 스승이 스승다워질 수 있는 조건이 먼저 개선되어야 한다. 온갖 잡무와 박봉에 시달리며 입시 위주의 교육에 매달려야 하는 교사는 제자들이 스스로 마땅히 따르고 존경할 스승이 될 수 없다.

전화를 끊고 곰곰이 옛일을 곱씹어보니 내가 잊고 지나친 기억이 하나 있었다. 가정 선생님은 그때 학생주임이셨다. 한창 혈기방장했던 내가 모종의 이유로 사고를 치고 처분을 기다릴 때, 진심으로 나를 걱정하며 징계의 수위를 낮추기 위해 동분서주하셨던 분이 바로 선생님이셨다. 아무리 세상을 다 아는 척 젠체하여도 기실 미숙하기만 했던 내게, 채 느끼지 못하고 보지 못한 스승의 사랑과 배려와 관심이 있었기에 지금이 있는 것이다.

불가에는 '줄탁(啄)'이라는 표현이 있다. 줄이란 병아리가 부화될 때 알 속에서 쭉쭉 빠는 소리를 내는 것을 말하고, 탁이란 어미닭이 병아리를 도우려 껍질을 쪼는 것을 말한다. 이를 세간에서는 '줄탁의 인연'이라는 참된 스승과 제자의 관계로 비유한다. 한 생명이 껍질을 깨고 세상 밖으로 나오려 발버둥칠 때 바깥에서 부리에 피가 맺히도록 껍질을 쪼아주는 정성…. 이 부박한 '스승 상실의 시대'에도 우리는 간절히 그런 인연을 바라고 있지 않은가.

김별아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