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들 ‘스파게티보울 효과’를 피하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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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2면

힘든 협상과 더 힘든 국회 비준절차를 거쳐 간신히 자유무역협정(FTA)을 발효시켰지만 수출입 기업의 FTA 활용률이 썩 높지는 않다. 현재까지 발효된 5개 FTA 중 칠레·싱가포르와의 FTA를 제외하면 수출입에서 FTA 특혜관세를 적용받는 비율이 의외로 낮은 수준이다. 지난해 1~5월 관세청이 국별 상위 50대 수출입품목을 분석한 결과 한·아세안의 경우 수입은 49%, 수출은 21%만이 FTA를 활용하고 있었다. 한·인도는 수입의 7%, 수출 15.4%만이 특혜관세를 적용받았다. ‘스파게티보울(Spaghetti Bowl) 효과’가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스파게티보울 효과란 여러 국가와 FTA를 동시다발적으로 체결했지만 국가마다 서로 다른 원산지규정, 통관절차, 표준 등이 스파게티처럼 서로 얽히면서 FTA 활용률이 저하되는 현상을 일컫는 말이다.

 정부는 원산지 규정 등에 대한 중소기업의 정보와 역량 부족이 원인이라고 진단한다. 그래서 기획재정부 안에 ‘FTA 활용종합지원센터’를 설치해 관계부처와 함께 FTA 활용도를 높이기 위한 종합대책을 추진 중이다. 정부의 FTA 종합지원포털(fta.korea.kr)을 비롯해 유관기관 사이트에 가면 FTA 활용에 관한 각종 정보를 얻을 수 있다. 김득갑 삼성경제연구소 연구전문위원은 “가장 시급한 과제는 국내 기업들이 FTA의 관세 철폐 효과를 누리는 데 필수요건인 원산지 규정을 충족하는 시스템을 갖추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한·EU FTA는 다른 FTA에 비해 협정 이행 즉시 자유화 비율이 높다. EU 측은 공산품 전 품목에 대해 5년 내 관세를 철폐하고, 이 중 99%는 3년 안에 없앤다. 따라서 FTA 발효 초기에 활용도를 높이는 게 유리하다. 정인교 인하대 교수는 “EU의 관세가 높으면서 가급적 조기에 자유화되는 품목 중심으로 EU 시장을 노려야 한다”고 조언했다. EU가 한국산 제품에 매기는 품목별 관세율과 협정상의 특혜 수준은 관세청 FTA 포털(fta.customs.go.kr)에서 확인할 수 있다.

EU는 한국산 제품에 평균 3.1%의 관세를 매기고 있지만 섬유·의류, 제지, 자동차 및 부품, 철강제품, 가공식품 등에 상대적으로 높은 관세를 매기고 있다. 정 교수는 “BMW나 아우디 등은 이미 국산 부품을 일정 부분 쓰고 있는데, 관세 인하나 철폐로 가격이 좀 더 떨어지면 경쟁력이 더욱 커질 것”이라며 “글로벌 기업의 아웃소싱 정보를 계속 수집하고 이들과의 교류를 늘리는 등 홍보·마케팅 작업에도 신경을 써야 한다”고 밝혔다.

서경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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