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통업체, 판매액 지역은행에 15일 이상 예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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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21일 대구시청에서 열린 ‘유통업상생발전협의회’ 참석자들이 대형 유통업체의 지역기여도 향상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 협의회는 대형 유통업체·소상인·시민단체 관계자등 15명으로 구성돼 있다. [대구시 제공]


대구시가 외지 대형 유통업체를 압박하고 있다. “지역에 더 많이 기여하라”며 고삐를 바짝 죄고 있다. 이들의 영업으로 지역 전통시장 상인 등 소상인들이 피해를 보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하지만 업체들은 “현실을 무시한 처사”라며 불만을 표시하고 있다.

 대구시는 최근 유통업상생발전협의회(협의회) 회의를 열어 대형 마트, 백화점, 기업형 수퍼마켓(SSM) 등 대형 유통업체의 ‘지역 기여도 가이드라인’을 만들고 올해부터 적용키로 했다. 협의회는 대구시 소상인 지원 및 유통업 협력조례에 따라 지난해 8월 대형 유통업체, 시민단체, 소상인 대표, 학계 관계자 등 15명으로 출범했다.

 가이드라인에 따르면 이들 업체는 ▶현금 판매 금액을 15일 이상 지역 은행에 유치하고▶대형 마트의 경우 지역 생산품을 매출액의 30% 이상(백화점은 20% 이상)구입▶인쇄·용역서비스의 70% 이상을 지역업체에서 발주토록 했다. 또 정규·비정규직의 95% 이상을 주민으로 채용하고, 순이익의 5%를 지역에 환원해 전통시 등의 소상인 지원자금으로 활용한다는 내용이다.


 시가 가이드라인을 만든 것은 외지 유통업체의 지역 경제에 대한 기여도가 낮다고 판단해서다. 특히 판매 금액을 본사가 있는 서울로 송금하면서 지역에 돈이 제대로 돌지 않는다고 지적한다. 홈플러스의 경우 지난해 8개 점포에서 5761억원의 매출을 올렸지만 지역 은행의 예금 평균 잔액은 1600만원에 지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코스트코홀세일과 롯데아웃렛은 예금 잔액이 전혀 없었다. 롯데백화점은 지역 은행에 200억원을 예치했고, 동아백화점도 평균잔액이 100억원에 달한 것과 대조적이었다. 이 자금은 지역 중소상인을 위해 대출된다. 지역 생산품 매입 비율은 홈플서스와 이마트가 각각 24% 수준이었지만 롯데마트·코스코홀세일은 20% 미만으로 조사됐다. 지역 주민 고용 실적은 롯데백화점을 제외하고 모두 90%를 넘었다.

대구시 김철섭 경제정책과장은 “대형 유통업체들이 지역에서 영업하며 많은 수익을 올리는 만큼 그에 상응하는 기여를 해야 한다”며 “지역업체의 판로 개척과 소상인 보호를 위해 불가피한 조치”라고 말했다.

 유통업체들은 불만이다. 개별 기업의 사정을 고려하지 않은 일률적 기준 적용은 문제라는 것이다. 대표적인 것은 순이익의 5% 지역사회 환원이다. 한 백화점 관계자는 “순이익의 일정 비율을 강제로 환원하라는 것 자체가 이해할 수 없는 조치”라고 지적했다. 지역 생산품의 구매비율도 지키기 어렵다고 털어 놓는다. 지역에서 생산하는 품목이 없거나 품질이 기준에 미치지 못하는 제품이 많다는 것이다. 유통업체들은 “가이드라인을 지키도록 노력하겠지만 현실적으로 어려운 부분이 있어 장담하긴 어렵다”고 밝혔다.

 대구시 김무연 생활경제담당은 “업체들이 이행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는 점을 인정한다”며 “지역 기여도를 높이자는 취지에서 설정한 만큼 지키도록 노력해 달라”고 말했다. 대구시는 내년 초 다시 기여도를 평가할 계획이다.

홍권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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