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와 함께] 아름다운 얘기만 동화가 되는 건 아니란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1면

그 사람을 본 적이 있나요?
김려령 글, 장경혜 그림
문학동네, 176쪽, 9800원

“진짜 나쁜 사람 나오는 동화 들려줄까? 기다려 봐. 그런 이야기도 곧 들려줄 테니까. 착해서 미치겠는 것만 동화인 줄 아니?”

 이야기 들으러 온 아이에게 이렇게 쏘아붙이는 주인공 오명랑은 동화작가다. 등단 3년 만에 무명작가는 백수와 다름 없다는 실상을 깨달은 그는 일 좀 하라는 식구들의 성화에 ‘동화작가 오명랑의 이야기 듣기 교실’ 방을 붙인다. 1개월 무료 수강 특전을 내세웠음에도 모인 아이는 단 세 명. 오명랑은 아이들을 앉혀두고 ‘그리운 건널목씨’란 이야기를 풀어간다. 아이들은 선생님의 이야기를 끊어가며 “지금 그걸 저희한테 믿으라는 거예요?”라고 꼬박꼬박 말대꾸를 한다.

 주인공이 인내심을 발휘해가며 이어가는 이야기는 대강 이렇다. 아리랑아파트 후문에는 건널목이 없어 아이들이 무단횡단을 일삼는다. 그 위험한 곳에서 건널목씨는 건널목이 그려진 카펫을 도로에 펼쳐놓고 수신호를 해가며 아이들이 안전하게 건너게 한다. 아침마다 아이들의 등굣길을 지켜주는 건널목씨가 고마워 아리랑아파트 주민들은 비어 있는 105동 경비실을 거처로 내어준다. 그 경비실에 어느 날 여자아이가 숨어든다. 경찰이 수시로 출동할 만큼 시끌벅적하게 부부싸움 하는 부모를 피해 도망 나온 것이다. 건널목씨와 친해진 아이는 건널목씨를 따라 어느 지하방에 부모 없이 살고 있는 남매를 만나게 되는데….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아이들의 말대꾸는 줄어든다. 만남이 반복될수록 점점 이야기에 빠져드는 것이다. 주인공이 오히려 어느 대목에선 지나치게 흥분한다. 동화로 차마 쓸 수 없는, 가슴 속 앙금으로 쌓아둔 자신의 이야기였던 것이다.

 베스트셀러 『완득이』의 김려령 작가가 내놓은 신작이다. 『내 가슴에 해마가 산다』를 작품 중에선 “‘문밖동네’라고 엄청 큰 출판사에서 나온, 『내 가슴에 낙타가 산다』라는 동화, 그거 내가 쓴 거야”라고 비틀어 넣었다. 작가는 경쾌한 문장으로 이야기꾼의 진면목을 아쉬움 없이 펼쳐낸다.

 이경희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