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 바루기] 빈정 상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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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9면

“싸움으로 빈정 상한 애인 달래는 나만의 방법.” “요즘 시누이 때문에 빈정 상해서 하소연해 봅니다.” “고스톱 치다가 빈정 상해 친구와 싸웠습니다.”

요즘 인터넷 게시판 등 온라인상에서 ‘빈정 상하다’는 말이 유행처럼 쓰이고 있다. 주로 ‘감정이 상하다’는 의미를 나타낼 때 이 말을 사용하는데 과연 바른 표현일까.

‘빈정(이) 상하다’가 바른 표현이 되려면 ‘빈정’이라는 단어(명사)가 존재해야 하지만 사전에 나와 있지 않다. ‘빈정’은 독립된 단어가 아닌 ‘빈정거리다’의 어근이다. 따라서 ‘빈정’ 혼자서는 쓰일 수 없으며 ‘빈정거리다’ ‘빈정대다’ ‘빈정빈정하다’ 형태로만 가능하다.

의미상으로도 ‘빈정 상하다’는 성립하지 않는다. ‘빈정’은 ‘-거리다’와 ‘-대다’ 등과 결합해 ‘남을 은근히 비웃는 태도로 놀리다’는 뜻으로 쓰이기 때문이다. 이런 의미로 ‘상하다’와 결합해서는 뜻이 통하지 않는다. 결국 ‘빈정 상하다’는 ‘(남이) 빈정(거려서) (마음이) 상하다’는 말을 압축한 표현임을 짐작할 수 있다.

‘빈정 상하다’는 통신언어의 특징인 축약이 의미에까지 이뤄진 기형적 표현이므로 사용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김현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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